<분수대>주머니속의 컴퓨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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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에 컴퓨터라는 이름의 「괴상한 기계」가 처음 반입된 것은 67년 3월이었다.한국생산성본부가 수입해 인천항에 상륙한일본 후지쓰의 파콤 컴퓨터였다.인천세관은 이 처음 보는 물건을어떻게 통관시켜야 할지 난감해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며 두달 가까이 보세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후지쓰가 IBM제품을 모방해 만든 이 컴퓨터는 대형상자만 21개였으며,총중량이 무려 35에 달했다.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올때는 대형트럭 5대가 동원돼야 할 정도였다.가격은 60만달러였는데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백억원이 넘 는 거액이었다.이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로 만든 제2세대 컴퓨터였는데 당시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집적회로(集積回路.IC)기술에 의한 제3세대컴퓨터가 팔리고 있었으므로 구형을 비싼 값에 사들여왔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결국 이 컴퓨터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 보지도못한채 4년만에 고물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우리나라 컴퓨터 초창기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컴퓨터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하드웨어부문의 컴퓨터업계가 지향해온 절대적 과제는 가볍고,얇고,짧고,작은 이른바 경박 단소(輕薄短小)의 제품을 추구하는 것이었다.「작은 몸에 큰 머리」는 컴퓨터의 이상(理想)이었고 그 진화(進化)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90년을 전후한 PC의 등장은 혁명적이라 할만 했다.코트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인 95LX나 커다란 손목시계처럼 팔에 감고 다닐 수 있는 1㎏ 무게의 팜 패드는 PC가 사무실.가정에서 덩치 큰 데스크톱을 대체할 것임을 이미 4~5년전에예고했다.PC의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 다른 모든 컴퓨터의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 것도 벌써 여러해 전의 일이다. 컴퓨터의 소형화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한다.가령 작은 체적속에서 수백만개나 되는 소자(素子)가 일제히 방열(放熱)할 경우 폭발 위험성 따위가 그것이다.하지만 「초전도 컴퓨터」가 출현하면 그것도 해결된다니 모두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이번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초소형 컴퓨터도 몇가지 장애를 제거하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과연 몸은 얼마나 더 작아지고 머리는 얼마나 더 커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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