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살해 위협한 ‘고시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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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박시환 대법관의 자택에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남자는 박 대법관에게 “너, 내가 죽일 거야”라며 다짜고짜 협박을 했다.

한 달 전, 박 대법관이 주심으로 참여했던 상고심에서 패소한 이모(50)씨였다. 민사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고 협박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 후 이씨는 박 대법관의 사무실·집 등으로 전화를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죽이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박 대법관의 가족까지 공포에 떨었다. 박 대법관은 “이씨에게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며 검찰에 신고했다.

중앙지검은 즉각 이씨를 잡기 위한 ‘체포전담조’를 구성했다. 검찰은 4개월 동안 이씨의 휴대전화를 추적하며 행적을 쫓았다. 하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사건은 서초경찰서로 이첩됐다. 경찰은 이씨가 박 대법관의 자택 인근에 나타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형사들은 1일 새벽부터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이씨를 기다렸다. 오후 8시쯤 이씨가 흉기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메고 버스에서 내렸다. 공범 A씨(51)와 함께였다.

잠복하던 경찰은 여경과 함께 ‘부부’인 척 대화하며 이씨에게 접근했다. 이씨가 평소에 ‘칼과 염산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다가간 것이다. 경찰은 결국 이씨와 A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밝혀졌다. 그는 20여 년간 고시공부를 했지만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사법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경찰은 전했다. 거기다 집안 민사소송에서 패소하자 앙심을 품은 것이다.

경찰은 5일 이씨를 살인미수·공갈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공범 A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공범 A씨를 인터넷을 통해 구했다. A씨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씨는 대법원이 있는 서울 서초동 인근에서 박 대법관에게 협박전화를 할 때 이른바 ‘대포폰’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A씨에게 사당동·신림동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기저기 통화를 하게 해 자신이 대법원 근처에 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이 때문에 검찰은 4개월 동안 이씨의 휴대전화로 위치추적을 했지만 이씨를 잡지 못했다. 이씨는 흉기를 소지하는 등 범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검거 당시 이씨의 몸에서 40㎝ 길이의 회칼이, 가방에선 망치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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