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돈 못 버는 이유? ‘도마뱀의 뇌’부터 길들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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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26면

-금융위기의 늪에 빠진 미국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은 정녕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나.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속인다. 우리는 무모하게 행동하면서도 ‘나는 현명하게 처신한다’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더 자세하게 말해 보자. 우리 두뇌에는 내가 ‘도마뱀의 뇌’라고 상징적으로 이름을 붙인, 고래의 원시시대 때부터 형성된 영역이 있다. 이것이 부지불식간에 금융시장과 관련한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 도마뱀의 뇌가 투자자들을 ‘위험 매니어’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도마뱀의 뇌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지금의 금융위기를 통해 똑똑히 확인하고 있다.”

투자행태 분석 권위자 테리 번햄 박사 인터뷰

-좀 어렵다. 쉽게 풀어보자. 자꾸 뛰는 부동산 값이 꺼림칙하다면서도 사람들은 줄줄이 ‘모기지 춤판’에 합세했다. 이게 지금의 미국발 금융위기 씨앗이었다. 한국에선 지난해 10월 ‘중국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결국 모두 당할 판이다. 왜 사람들은 무모하게 상투를 잡고, 거꾸로 어리석게 바닥에선 발을 빼나.
“원래 인간의 뇌는 먹고, 생존하고, 번식하도록 만들어졌다. 투자나 매매에 어울리도록 설계된 게 아니다. 우리의 뇌는 과거지향적이고, 특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특징은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냥’을 나갈 땐 그만이었다. 식량을 성공적으로 찾으려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성공적이라고 판단된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나 자산시장에선 다르다. 이런 본능은 앞으로 가격이 오를 투자상품이 아니라 이미 상승한 상품을 사도록 만든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밑바닥에도 이런 기제가 숨어 있다.”

-그러나 시장은 합리적이지 않나. 경제학 교과서가 그렇게 말한다. 욕심과 공포가 범람해도 머잖아 시장은 평정을 되찾지 않겠나.
“시장은 비합리적이다. 아니 더 나아가‘비열하다’. 시장에서 가격은 감정과 호르몬 분출에 지배된다. 합리적인 계산이 깔린 게 아니다. 어느 날 우리는 증시의 탈출구를 찾아 쇄도하고 주가도 폭락하지만, 다음 날엔 열광적으로 매수 주문을 내고 주가도 치솟는다. 이런 사례는 합리적인 시장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그런 변수들이 가격의 결정과 변화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시장이 비열하다면 그 먹잇감이 되고픈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도마뱀의 뇌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당신의 해법은 무엇인가.
“애석하게 도마뱀의 뇌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인간 본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러오는 피해를 줄이려면 ‘W·I·N’이란 전략을 추천하고 싶다. W는 ‘깨어나라(Wake)’는 뜻이다. 도마뱀의 뇌가 투자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의식하려고 애를 써라. ‘시장은 합리적’이라는 통념을 던져 버리고, 내 안에 동물적 속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I는 ‘탐구하라(Investigate)’는 소리다. 자신의 투자 약점을 캐고 또 캐야 한다. 실패의 경험은 저마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N은 ‘중립화(Neutralize)’의 약자다. 우리의 감정은 대인관계나 다른 상황에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감정은 ‘파괴적’이다. 도마뱀의 뇌를 중화시키려면 ‘훈련된 투자’를 하도록 뇌에 차단벽을 쳐 놓아야 한다.”

-그런 해법은 평소부터 착실히 닦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심각한 ‘위기 국면’이다. 비상시 행동 요강은 무엇인가.
“뭐가 있겠나. 허리띠 졸라매기가 최우선이다. 수입 한도에서 살아야 한다. 더 작은 집을 사고, 더 싼 자동차를 몰고, 더 싼 음식을 먹는 길뿐이다. 이를 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이 월급 계좌에서 자동으로 저축 계좌로 이체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음으론 운동과 건강검진을 권하고 싶다. 위기일수록 몸도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신기루다. 건강과 운동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으로 인도한다.”

-한국 시장이 유독 민감하게 출렁대는 이유는 뭔가.
“펀더멘털과 감정적 요인이 얽혀 있다. 예컨대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움츠러들면 한국 수출은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크다. 여기에 도마뱀의 뇌에 영향 받은 중요 투자자 그룹들이 주식을 팔고 있다. 이들의 감정적 반응이 한국 발 빼기로 나타나고 있으며 주가의 커다란 진폭을 낳고 있다.”

-700조원의 구제금융이 투입되면 회생의 불씨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이번 법안으로 위기가 쉽게 진정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는 구제금융법을 통해 여러 경제 주체에게 고통을 분담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어마어마한 총비용이 근본적으로 줄어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정부는 그동안 ‘어리석은 리스크’에 베팅한 투자자들에게 보상하는 식으로 정책을 폈고, 이제 신중한 투자자들이 그 비용을 대신 치러 줘야 할 차례가 됐다.”

-이전 질문에 아직 답을 안 했다. 시장은 언제쯤 평정을 찾겠나. 바닥을 확인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무엇인가.
“이번 위기 사이클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구체적으로 시기를 말하긴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시 일어서기까지 더 고통스러운 ‘숙청 작업’(house cleaning)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대공황(1929년)의 고통에 견주는 전문가들이 많다. 숱한 위기를 학습했는데도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뭔가.
“아마 이번 위기는 대공황보다 더 나쁜 결과를 빚을 가능성도 있다. 탐욕과 공포의 순환은 영원히 되풀이될 것이다. 도마뱀의 뇌는 금융시장에서 우리를 좌절케 만든다. 이런 ‘좌절의 방정식’은 시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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