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여전사 블러드굿 “‘태극기 휘날리며’의 원빈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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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모델뿐 아니라 가수·댄서도 했었어요. 특히 댄서 경험 덕분에 액션 연기가 편해요. 스턴트를 대부분 직접 소화했죠.”

할리우드의 한국계 배우 문 블러드굿(33·사진)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는 내년에 개봉할 터미네이터 시리즈 제4편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의 저항군 소속 파일럿, 즉 여전사 역이다. “내가 출연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어렸을 때 본 ‘터미네이터’에 동양인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이번은 핵폭발 뒤 다양한 인종이 살아남은 모습을 다뤄 나 같은 혼혈이 유리했죠.”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블러드굿은 어려서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는 보통 두세 가지 일을 해야만 했어요. 18살 때까지 엄마와 한 침대를 썼는데(그만큼 가난했다는 얘기), 새벽 2시 반이면 일하러 나가셨죠.” 인터뷰에 동석한 어머니 정상자씨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살라는 것 외에는 딸에게 해 준 게 없다”라고 말했다.

연기 외에 이루고 싶은 것을 묻자 “상업적이 아닌, 개인 음반을 내는 것”을 꼽았다. “결혼도 하고 싶고, 아기도 낳고 싶죠. 기회가 되면 한국인 아기를, 이왕이면 북한 아기를 입양하고 싶어요. 김정일씨에게 말해 줄 수 있나요?(웃음)”

블러드굿은 가장 감동적으로 본 한국영화로 ‘태극기 휘날리며’을 꼽았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이 그렇게 비참했다는 걸 잘 모른다”라고 했다. 형제·가족의 정을 그린 것에 공감이 컸던 듯 “영화를 본 직후 엄마·언니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라고 밝혔다. “동생 역의 배우(원빈)를 좋아한다”며 한국말로 “잘생겨서”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말을 곧잘 알아들으면서도 “이상하게 말은 서툴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주말한인학교에서 한국어·태권도를 배웠지만 “영어만 쓰려고 했다”라고 돌이켰다. 성장기의 정체성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00% 미국인도, 100% 한국인도 아닌 게 혼란스러웠죠. 지금은 자랑스러워요.”

이상형을 묻자 “상냥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하던 끝에 “우리 엄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조건을 달았다.“우리 엄마도 좋아하셔야지요. 까다로우시거든요. (웃음)”

첫 방문인 부산은 마침 어머니의 고향이다. “간밤에 엄마한테 그랬어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이렇게 다 큰 딸과 영화 일로 부산에 다시 올 줄 꿈꿔봤느냐고요.”

글=이후남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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