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韓民族 네트워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뉴욕 필하모니 음악감독이자 세계적 지휘자인 주빈 메타는 모든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조국 이스라엘로 날아갔다.91년1월 걸프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이라크 미사일이 텔아비브 하늘을 날고있을 때 그는 특별음악회를 열어 불안초조에 휩싸인 이스라엘인들을위로했다.『뿌리 없는 음악은 생명력이 없다.나는 음악인이기에 앞서 이스라엘인이다.조국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데 어찌 편히외국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겠는가.』인도출신의 미국적 유대인인 주빈 메타가 보여주는 감동적 조국애 다.당시 위태로운 조국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유대인이 1만5천명을 넘었다.
중국 조선족 선원들의 집단살인 현장검증을 보면서 같은 핏줄 동포로서 저럴수가 있나 하는 깊은 배신감을 누구나 느꼈다.이런배신감은 두가지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어차피 중국인 아닌가,이젠 동포라고 봐줄게 없다는 강한 반발이고 우 리가 동포에게얼마나 야속하게 굴었으면 저런 참극이 일어났을까 하는 반성이다. 조선족 집단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첫 반응은 국내 원양어업협회가 조선족 선원의 고용을 전면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옌볜(延邊)자치구 선원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의사 표시로나타났다.당장 심정이야 응징해 마땅하다는 분위기지 만 보다 먼장래를 생각한다면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해외동포들에게 무얼해주었나 좀더 냉정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3,4년전부터 중국 조선족들이 몰려들었다.지하도에 좌판을 깔고 보잘것 없는 물건을 팔면서 단속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우리는 냉소와 멸시를 보이지 않았던가.백두산 관광중 들르는 옌지(延吉)에서 몇푼의 지폐로 동포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잘사는 조국의 천한 몰골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않았던가.미국 동포들이 흑인난동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을 때 조국은 그들에게 진정 무엇을 해주었던가.어차피 떠난 조국에 손 벌리려 하지말고 그 사회속에서 친화력을 가지고 잘살아 보라 고 나몰라라 하지 않았던가.이들이 과연 조국이 위난에 처했을 때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올 것인가.
구시대적 조국애를 호소하자는게 아니다.21세기를 위한 한민족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가동해야 아시아권에서 살아남을수 있기 때문이다.해외동포 5백50만명은 화교 5천5백만명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이스라엘.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4대 교포대국에 속한다.형제든,동포든 핏줄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힘이 결집되진 않는다.밀고 끌어주는 상부상조 없이는 공짜로 결집력이 생겨나질않는다.잘못된 핏줄은 남보다 더 깊은 원한과 복수로 반전할 수있음을 이번 선상반란사건에서 확 인하지 않았는가.
세계음악의 무대인 뉴욕을 「Jew York」이라할 만큼 유대인 음악세력은 강하다.대니얼 바렌보임이 파리오케스트라를 장악한다음 시카고심포니 지휘자로 전격 취임한 배경엔 유대인 부호들의집중 비호와 유대인 음악계 대부인 게오르그 솔 티의 밀어주기가작용한 탓이다.아이작 스턴이 없었던들 핑커스 주커만이나 이츠하크 펄먼이 그처럼 위명을 날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와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전총리는 앞다퉈 「화인(華人)네트워크」를 조직해 해마다 세계화상(華商)대회를 열어 전세계 화교기업인들은 뭉쳐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아시아.태평양연안의 경제권을 「대중화공영권」으 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다.
중국인이야말로 「관시(關係)」를 중시하는 민족이다.고향이 같고 성씨.업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신용과 연대를 확인하는 향방(鄕幇).성방(姓幇).업방(業幇)이 결성되고 이 조직이 확대되어 푸젠(福建).광둥(廣東).객가(客家)등 5대방 이 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이러니 동남아 10대재벌중 9명이 중국계고 아세안 국가중 6%에 불과한 화교가 전체 자본의 70%를 차지한다는 노무라증권의 분석이 나온다.「차이니스 커넥션」이동남아경제를 석권한지 오래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중 로스앤젤레스에 들러 재외동포재단을 내년에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민족 네트워크를 조직해 끌어당기고 밀어주는 상부상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교민들을 만나 인사치레로 넘어가 는 발표가 아니라 21세기 새 도약을 위한 「코리안 커넥션」,한민족공영체구상이라는 큰 틀의 조직적 계획이 나와야 한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