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요인터뷰>선거비용 實査 실무지휘 박기수 선거관리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이번 여름은 제가 겪어본 여름중 가장 무덥고 길었습니다.』4.11총선 선거비용 실사결과가 하한기 정치권을 휘몰아친 뒤 만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기수(朴基洙.52)선거관리관의 첫 마디다.선관위는 지난달 23일 현역의원 20명에 대해 법정선거비초과지출등 위법행위를 적발,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 조치했다.선관위가 선거후 이렇게 현역의원들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한 것은 우리 선거사상 처음있는 일이다.정치권은 그뒤처리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정치권이 스스로 만든 통합선거법 제정정신을 잊은채 그 법에 따라,그리고 여건이 허용하는 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선거비용을 실사한 선관위를 흠집내려는 의도조차 엿보였다.선관위의 권위를 살려주고 존중하려는 사회 의지와노력이 없는한 불법.타 락.금권으로 얼룩져온 우리 선거풍토의 쇄신과 개혁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을 것이다.이번에 이방대한 실사작업을 실무적으로 총지휘한 사람이 朴선거관리관이다.
실사 뒷얘기와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선관위의 선거비용 실사결과가 정치권을 휘몰아 쳤는데요.이번작업결과에 대해 내부평가는 어떻습니까.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비용 실사는 건국후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따라서 한번의 결과를 놓고 만족할수는 없겠죠.경험도 미숙했고 처음 하다보니 부족한게 많았고요.그러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비용 실사결과를 둘러싸고 정치권은태풍이다,미풍이다 말이 많습니다.
『통합선거법을 만들 당시의 정신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 선거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해서 만들어진게 통합선거법 아닙니까.선거에 임하는 정치권도 자연히 이에대한 준비가 뒤따랐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어요.적발되니 뒤늦게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데 후보나 정당에서 사전에 실사규정을 숙지해 충분히 대비했어야 합니다.』 -이번 비용실사의 가장 큰 의미는 뭐라고보십니까.
『공명선거를 저해하는 4대 요인으로 저는 금권.관권.선거폭력.흑색선전을 꼽습니다.이중 최근들어 선거폭력은 없어지고 관권개입도 조직적으로는 불가능해지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남은게 바로 돈입니다.그런 점에서 통합선거법을제정할때 비용 실사제도를 둔 것은 정치권이 문제점을 제대로 본거죠.』 -그러나 선거비용 실사결과에 대해 대도(大盜)는 다 빠져 나가는등 진짜 문제후보들은 빠졌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실사결과에 대해 내부적으로 보는 기준은 다를수 있습니다.선거비용 실사가 선거부정 전반을 체크하는 것은 아닙니다.사전선거운동은 사전선거운동대로 단속하고 선거기간중의 불법행위는 그것대로 선거때 단속하는 것입니다.
후보들이 제출한 회계보고서에 대한 비용실사는 선거후의 일이죠.물론 비용을 추적하다 보면 새로운 불법행위가 일부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비용실사가 선거부정 전부를 대표하는 건 아닙니다.』-시민단체에서는 특히 총선당시 격전지로 꼽혀 고소.고발이 난무했던 문제후보들에 대한 적발은 기대이하라고 비판했는데….
『이번 실사결과에 대해 일부에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형평성문제를 꼽고 있는데 실사작업은 각 시.도 단위로 올라온 의견서를 토대로 했습니다.따라서 지역에 따라 덜 나온 곳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의도적으로 조정한 일은 결코 없습니다.
두번째가 문제후보들인데요.이 점에 대해선 설명이 필요합니다.
비용 실사규정을 보면 선관위의 실사결과 허위지출 사실등이 밝혀지면 가장 강력한 조치가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고발이란 원래 수사권이 없는 사람이 수 사기관에 단서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한데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소위 격전지의 문제후보들중 대부분은 이미 선거기간중 불법행위로 고발돼 검찰이 수사중입니다.따라서 추가 적발사항이 있으면 새로 고발하겠지만 이미 고발된사안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처벌대상이 될 것이라 고 봅니다.』-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검찰이 최근 밝힌 현역의원 52명 수사부분을 말하는겁니까.
『그렇습니다.』 -어쨌든 격전지후보들의 경우 선거비용과 관련해서는 적발사항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물론 비용에서 초과지출등 추가혐의가 더 적발된 것은 없습니다.다만 검찰이 수사를 진행중인 만큼 수사후 비용부문에 대해 별도 조치가 선관위에 의뢰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즉 비용이 추가로 적발되면 검찰에서 선관위에 자료를 요청할 것 이고,그 결과에 따라 처리될 것입니다.』 -선관위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여전히 신한국당 김윤환(金潤煥)전대표 부문에 대해 해석이 미묘한데요.
『(목청을 높이며)제 양심을 걸고 얘기할수 있습니다.선관위 선거국장이 어떻게 사람을 보고 고발여부를 결정합니까.행위를 보고 판단할 뿐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국회 국정감사도 받아야 하고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할 입장입니다.그 분의 경우 회계보고서 자체에 위법사항이다 들어있습니다.우리는 현장확인만 했습니다.작심하고 찾은 것이라기 보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추적해보니 혐의사항 이 사실로 규정돼 적발된 것입니다.』 -일부 후보는 선관위가 적용한 선거비용 규정이 너무 확대 해석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비용 실사의 출발점은 후보자가 제출한 회계보고서와 회계장부.영수증등입니다.이것을 가지고 현장 확인에 들어가면 새로운 단서가 나오고 해서 부채살처럼 실사작업이 확산되는 과정을 밟아왔습니다.때문에 수집된 자료 대부분이 현장에서 얻어 진 것들입니다.』 -선관위의 의욕적인 실사결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정치권과 검찰에선 막상 기소대상자는 거의 없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제가 알기에 검찰은 아직 구체적인 판단단계에 들어가지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물론 검찰 나름대로 공소시효가 촉박하고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정치권에서 자꾸 그런 쪽으로 희망하는건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초점을 정확히 맞춰야 합니다.선거비용 실사결과를 축소,폄하하려는 노력보다 앞으로 우리 선거문화를 한단계 높이자는 쪽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비용 실사결과를 폄하하고 매도하면 도대체 어디로 가자는 얘기입니까.옛날로 가자는 얘기입니까,아니면 아예 단속하지 말자는 얘기입니까.작업결과가 1백%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올바른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런 주장들이 부각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법집행을 매도한다면 비용 실사제도는왜 만들었습니까.』 -검찰의 기소여부 결정에 대해 선관위가 나중에 이의를 제기할수 있나요.
『재정신청제도는 정당과 후보는 가능하지만 선거법상 선관위는 제외돼 있습니다.다만 검찰청법에 항고제도가 있는데 시효가 10월11일까지입니다.선관위 자체적으로 이의신청할 수도 있겠지만 시기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셈이죠.일단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주길 바랄 뿐입니다.그뒤 생각할 문제입니다.』 -실사결과 발표직후 선관위 내부에선 현역의원 9명정도는 당선무효를 자신한다는얘기도 나왔는데요.실제 그렇게 확신합니까.
『확신여부는 우리 몫이 아닙니다.검찰에 넘겨놓은 마당에 검찰판단에 맡겨야지요.그게 기관간의 예의입니다.그러나 적어도 제대로 수사한다면 결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실사제도가 처음 실시된 지난해 지방선거의 경우 지금 재선거와보궐선거가 줄을 잇고 있지 않습니까.서울노원구.전남여천등 30여건이 넘습니다.』 -내년 대통령선거 역시 선거비용 실사가 이뤄지겠죠.
『물론입니다.통합선거법 제정후 비용실사제도가 처음 시도된 지방선거때는 후보가 많아 당선자 중심으로 했습니다.전체후보를 대상으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통령선거 때도 결국 회계책임자가 중앙당이나 사무실에 있고 시.군마다 연락소를 설치하고 회계책임자를 두고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실사에 만전을 기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실사인력이나 장비.기술상의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가장 큰 어려움은 조사대상이 방대했다는 점입니다.선거기획사나 인쇄업체들이 대도시에 몰려있다 보니 지방에선 왕복조사를 해야 했습니다.면담대상 선거사무원만 따져도 1개면에 30~40명이 넘었습니다.한마디로 비용실사 작업이란게 후보들 이 선거운동을 한 만큼 뛰어야 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보다 정보 부족이었습니다.후보들이 뿌리는 음성적인 돈을 밝히는데 있어 선거일선에서 뛰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잘알지 않겠습니까.그러나 막상 비용 실사제도를 그렇게 홍보했는데도 후보들이나 유권자들은 거의 무관심했습니다.
후보 1천3백여명에 이의신청이 고작 2건이었으니까요.결국 정보가 부족하니 전부 우리 손으로 해야 했지요.이 점은 고쳐져야합니다. 두번째는 확인서를 받는 일이었습니다.선거가 끝난뒤 사람 만나기도 힘든데 확인서를 받자니 어떠했겠습니까.
또 한가지 돈이 오가는 것은 주고 받는 사람이 입을 다물면 그만입니다.이러다 보니 움직일수 없는 자료나 증거를 들이밀어야입을 열지 않겠습니까.이런게 어려웠죠.』 ***구조적으로 돈 쓸곳 많아 -이번 실사를 하면서 우리 선거문화에 대해 느끼신 점도 많겠습니다.
『물론 많습니다.한마디로 비용실사를 해보니 우리 선거의 총체적인 모습을 파악할수 있었습니다.선거운동이란게 원래 돈과 불가분의 관계 아닙니까.때문에 돈을 통한 선거운동 전반을 파악할수있었습니다.
실사결과에 대한 문제점등을 앞으로 검토,연구해 봐야겠으나 실무입장에서 크게 두가지를 느꼈습니다.
우선 선거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가 선거비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선거운동 계획을 수립해 돈을 지출해야 하나선거운동 자체가 무계획적입니다.그때 그때 주고 받다보니 회계보고서 내용이 안맞을 수밖에요.
또 하나는 우리선거가 아직도 구조적으로 돈이 들어갈 곳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이번에 실사해보니 유권자들에 대한 비용지출은 거의 없어진 반면 주로 조직가동비가 돈 선거의 주범이었습니다. 선거연락소등 정당 하부조직이 그것이지요.이런 문제는 제도개선 차원에서 심도있게 논의돼야 합니다.』 -실사작업을 둘러싼뒷얘기좀 소개해 주시죠.
『일선 실사반원들의 경험담을 모아 책으로 엮을 생각입니다.한지방 실사반원의 경우 서울에 와 여관방을 잡고 선거기획사를 추적하는데 길을 모르다보니 바로 코앞에 놓고 며칠을 헤맨 경우도있습니다.
모후보의 회계책임자는 자꾸 실사반을 피해 고모.삼촌집까지 여섯번이상 찾아가 겨우 만난 일도 있습니다.고생한 일선직원들에게미안할 뿐입니다.』 -朴관리관께서는 선관위에 언제 몸을 담으셨나요. 『78년에 들어와 통일주체국민회의선거를 처음 치렀습니다.』 -이번 실사기간중 집에도 제대로 못들어 간걸로 아는데요.
『젊은 직원들이 이혼사유에 해당된다고 농담할 정도였습니다.저도 마찬가지였죠(웃음).이번 실사기간을 한마디로 말하면 「가장무덥고 긴 여름」이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