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전상 놀라워 … 내 희생 헛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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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용산 전쟁기념관의 해외참전자 위령탑 앞에서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그리스의 알렉산더 카라자스(82·사진) 예비역 대령. 그는 “함께 자유를 지키러 왔다 낯선 한국 땅에서 전사한 전우와 부하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1일 오전 숙소인 잠실 롯데호텔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카라자스는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3등 무공훈장 162호를 비롯해 군 생활 중 받은 13개의 훈장을 내보이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스는 6·25전쟁 때 연인원 4992명을 파병했다. 이 가운데 192명이 전사하고 543명이 부상했다. 카라자스도 전투 중 포탄 파편에 가슴과 팔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지금도 거동이 불편하다. 보병 대위였던 카라자스는 6·25가 한창이던 1951년 7월 한국에 도착했다. 그해 10월 중화기부대 부지휘관으로 철원 인근 스코치311 고지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중상을 입었다. 그리스군 49명이 전사하고 120명이 부상한 큰 전투였다.

카라자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전투였다”며 “나는 뼈와 장기가 다 드러날 정도로 상처가 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도쿄의 군 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오른팔과 왼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됐다.

전쟁에서 입은 상처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6년 동안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건축가를 꿈꾸던 그는 전역 뒤 곤궁한 삶을 살아야 했다. 독일인 아내와 아들을 돌보기도 쉽지 않았다.

카라자스는 “그리스 정부는 나를 2계급 특진시켜 주었지만 그밖의 보상은 없었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참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침략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어 참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6·25전쟁은 나를 평생 불구로 만들었지만, 한국의 놀라운 발전상은 젊은 시절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라자스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각오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라며 “그리스 젊은이들의 희생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만드는 데 작은 조약돌이라도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강달신) 초청으로 6·25 참전 16개국 상이용사 29명과 함께 서울에 온 그는 1일 국군의 날 행사 카퍼레이드에 참석했다. 노병들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서울 시내를 둘러봤다. 상이군경회 측은 더 많은 참전용사를 초청했으나 대부분 고령에 상이용사들이라 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글·사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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