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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리얼리즘은 때로 이렇게 우화(寓話)와 만나고 신비주의와 통한다. 고개를 넘어 마을로,숲을 지나 언덕으로,그리고 골목에서 골목으로 짝꿍의 집을 찾아 달리는 소년 아마드의 하루는 아무런포장도,수식도 없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사실적이다.그 하루의 사실성은 그러나 눈맑고 참을성 있는 이만이 발견할 수 있는 삶의길과 길위의 진실을 함축적으로 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비로우며 범속한 인생의 우화로 연결된다.
숙제를 해오지 않아 선생님께 야단맞았던 친구 네마자데의 공책이 아마드의 가방에 또 흘러들어왔다.숙제를 하지 않은 벌로 퇴학당할지도 모른다.이 생각에 아마드는 애가 타기 시작한다.자기숙제만 하고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그래서 엄마집을 몰래빠져나와 어딘지도 모르는 짝의 집을 찾아 헤맨다.이때부터 영화는 소년의 달음박질에 바쳐진다.
낡은 스웨터를 입은 그 소년의 달리기는 단순하지만 그 달리기가 상징하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그건 두 친구 사이의 거리를잇는 우정이라는 정신의 질주다.
허름한 돌담,귀퉁이가 닳아빠진 문짝,빨랫줄이 늘어져 있는 골목이라는 초라한 「현재」의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집찾기를 방해하는 무심한 어른이라는 낯선 공간을 넘어 아주 둥글게 우리 안으로 파고드는 유년의 절망적인 풍경이다.
새롭다.그리고 아름답다.이런 달리기는 그동안 아무에게서도 주목받지 못했다.시간을 건너뛰고 공간을 감추어 그 결과만 성급히보여주고 싶어하는 여느 감독들에게 이 짧으면서도 긴 인생의 진정어린 순간은 괄호 안에 묶인 시간들이었다.키아 로스타미는 생략된 공간,그리하여 망각된 시간을 골목의 틈새에서 끄집어내 차분히 펼쳐보인 것이다.
여기서 포시테마을에 사는 어느 할아버지의 느린 걸음걸이는 단연 영화의 주제로 통한다.노인은 아마드가 만난 가장 큰 장애다.그는 귀담아 듣지않고 바쁘게 걷지 못한다.단지 자기 얘기를 쉬엄쉬엄 들려줄 뿐이다.
가난한 담장에 드리워진 문양의 그림자같은 시간을.이건 벽창호처럼 우스운 의사불통의 장치를 통해 서로의 얘기를 슬며시 교통시키는 기획이다.아마드는 잠시 지체되었겠지만 그 시간동안 소년과 관객은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잠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정룡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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