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품 '高비용 구조' 된서리-수출할 물건이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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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외 오더에 맞춰 국내 제조업체들로부터 수출할 물건 구하는게 일이었는데 올해는 오더 자체가 많이 줄었어요.그나마 가격도 안맞고….』이중삼(李中三) ㈜선경 고문의 푸념이다.
그는 『한국제품 좀 사달라고 바이어들을 설득하면 「값은 비싸졌지,품질은 그대로인데 왜 사느냐」고 되묻는다』며 한숨을 지었다. 수출업계가 총체적인 고민에 빠져있다.
『해외에 내다팔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7월 수출,93년1월이후 42개월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3.6%)기록.1~7월 무역적자,지난해 한해치를 이미 넘어선 1백3억여달러」.
과천 경제부처들이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급기야는 대통령이 직접 수출업계 간담회를 주재하는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우리 경제의 우울한 올해 성적표다.
수출부진의 직접적인 계기는 환율.지난해 봄 달러당 79엔까지떨어졌던 엔화환율이 이젠 1백10엔 안팎까지 30%이상 올랐다.우리 주력업종(반도체.자동차.조선등)은 해외에서 일본제품과 경합이 많아 그만큼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달러강세에 국제금리.유가상승까지 겹쳐 「신3고(高)시대」라는분석도 나오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외생변수들이 진정한 우리경제의 문제는 아니다.
좌승희(左承喜)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80년대 후반 수출이 잘될 때는 체질개선에 게을리하다가 수출이 어려워지니까 환율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총체적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노동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상승,경쟁국의 갑절에 이르는 금리,떨어질줄 모르는 땅값등 고비용구조가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 발목을 잡고있다는 것이다.
이동찬(李東燦)경총회장은 『최근 몇년간 국내 제조원가 상승추세를 보면 자명해진다.기업가들이 사업할 의욕을 잃고 있는 것이문제』라고 말한다.
신세길(申世吉)삼성물산 무역부문 사장은 『1년단위로 매출.순익등의 기복을 따지며 일희일비 (一喜一悲)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그는 『7월수출이 부진했던 것은 상반기말인 6월의 밀어내기 수출여파가 크다』며 『단편적인 수치들보다 미국엔 반도체.자동차정도 외에 팔 것이 없을 정도로 약화된 한국상품의경쟁력이 문제』라 고 진단했다.
94,95년의 경기가 좋았던 것은 엔고 덕분인데 엔저로 바뀌며 우리의 허약한 밑천이 드러난 것으로 경쟁력 회복없이는 선진국엔 품질로,후발국엔 가격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반도체 이후 한국을 대표할 상품 이 없는 것도 문제다.
김태일(金泰日)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는 『수출 둔화를 만회하려면 반도체이후를 이끌 차세대 전략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는 지난해 로열티로 20억달러,올 1~5월중 13억달러를 외국에 줘야 했다.신기술과 브랜드를 개발해 키우는 일에 소홀히한 탓이다.
『다른나라와 차별화할 수 있는 미래형 독자기술이 확보되지 못한 것이 경쟁력있는 제품을 못만드는 원인』(李銀俊 LG전자 부사장)이라는 분석이다.행정규제 완화와 SOC 확충도 긴요하다.
***[ 25면 조언했다.
우리는 지난해 로열티로 20억달러,올 1~5월중 13억달러를외국에 줘야 했다.신기술과 브랜드를 개발해 키우는 일에 소홀히한 탓이다.
『다른나라와 차별화할 수 있는 미래형 독자기술이 확보되지 못한 것이 경쟁력있 는 제품을 못만드는 원인』(李銀俊 LG전자 부사장)이라는 분석이다.행정규제 완화와 SOC 확충도 긴요하다. ***[ 25면 『팔 물건이…』서 계속 ] 국내 제조업체들의 물류비는 84~94년 사이 연 15.5%씩 증가해 이젠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이 14.3%에 달하고 있다.7~8%선인미.일등 선진국의 2배다(교통개발원 분석).
이계안(李啓安)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전무는 『기업들이 왜 해외로 나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신규투자하면 특혜라고 하고 규제도 많기 때문인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경쟁력과 관련해 즉효약은 없다.물류비나 땅값.금리등이 단기간에 개선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이윤호(李允鎬)LG경제연구원 대표이사는 『단기대책은 있을 수 없고 장기적으로 고비용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무역협회가 1천개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바이어들로부터 개선요구를 받은 사항으로 가격(53%)과 품질(28%)이 가장 많이 꼽혔다.결국 싼값에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 회복의 관건인 셈이다.이는 1차 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김석준(金錫俊)쌍용그룹 회장은 『돈이 없다,사람이 없다,리스크가 크다,시장이 불투명하다는등 소극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며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그러나 기업의 힘만으로는 안되고 결국은 정부.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김중웅(金重雄 )현대경제사회연구원장은 『정부는 기업활동 의욕을 부추기고,국민은 근검절약하며,기업은 경쟁력 회복에 힘써야 한다』며 『3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병관,이수호,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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