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국내최고 산업디자이너 김교만 명예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최종 승부는 아름다움에서 결정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 1백인」중에서도 최고의 산업디자이너로 선정된 김교만(金敎滿.68)서울대 명예교수.해방이후 지금까지 국내 산업디자이너의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KIDP)이 이달초 마련한 이번 행사에서 金교수는 3백99명의 평가위원중 무려 70%의 추천으로 국내 제1의 디자이너로 선정됐다.사실 金교수는 국내 산업디자인의 1세대를 연 대부(代父)로 불린다.
30여년에 걸쳐 작품활동을 하며 그가 바탕으로 삼았던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
부채춤이나 농무같은 토속적 소재가 한국 디자인을 차별화.세계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지론이다.그는 또 『한 나라의 문화와 산업이 디자인 수준으로 결판나는 디자인의 세계가 곧 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재작년 정년퇴직후 개인 연구소를 설립,필생의 역작으로 남길 전통소재의 산업디자인전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金교수를 본지 박병석(朴炳錫)경제2부장이 만나봤다.
▶28년 충남 공주생 ▶50년 서울 성남고졸 ▶56년 서울대미대졸 ▶65~94년 서울대 미술대 산업미술과 교수 ▶87~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환경디자인 심사위원 ▶80년~ 서울일러스트레이터협회장 ▶87년~ 정보통신부 우표심의협의회 심의위원 ▶94~ 서울대 미술대 명예교수 『한국의 가락,디자인연구사』(80년)등 다수 -한국 최고의 산업디자이너로 선정됐는데 어떤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제가 1등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영광스럽고 기쁘기 한량없습니다.제가 작가와 교육자 두가지 일을 해왔다는 것과 저만의 독특한 세계를 추구해온 점이 평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金교수만의 독특한 세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산업디자인은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만드는 것으로 남을 위한서비스지요.따라서 상업성이 강해지고 디자이너 자신만의 예술세계는 부족해지게 마련입니다.그러나 저는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의 개성이 듬뿍 담긴 세계를 남에게 서비스한다는 생 각을 고집해 왔습니다.예를 들어 94년 한국방문의 해를 기념해 만든 심벌은제 사인이 없어도 제 작품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게 하는 그런 독특함을 말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남대문을 저렇게 박대하면 안됩니다.공원을 만들어야지요.외국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싶어도 찍을 장소가 없다고 푸념합니다.뉴욕은 자유의 여신상이,파리는 에펠탑이,런던은 런던브리지가 유명한데 한국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그래서 저는 우리 민속을 한국적인 것으로 내세우면 어떨까 생각하고 매달려 왔습니다.부채춤.
농악같은 것이 저의 대표적인 디자인 소재지요.저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이런 전통적인 것들을 항상 볼 수 있도록 예술의전당같은 곳에 상시공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디자인」과 「세계적인 것」은 양립될 수 있는것인가요.
『다른 나라와 차별화하는데는 한국적인 것이 아주 효과적이지요.특히 농악.가면놀이같은 것은 음률과 시각효과를 겸비한 최고의디자인 소재지요.달밤에 언덕에서 농악대가 수십미터씩 줄을 지어내려오는 모습은 가위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어 요.』 -순서가바뀐 듯합니다만 산업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주시지요.
『(金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듯 펜을 꺼내 백지에 도표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다)해방 직후 디자인이란 개념도 없을때 서울대에 「도안과」가 설치됐지요.산업디자인의 시발입니다.몇년 뒤 도안이란 말이 적당치 않다 해서 「응용미술」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뒤「상업미술」「상업디자인」「그래픽디자인」등으로 바뀌었어요.「산업디자인」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전부터입니다.
30여년동안 무려 일곱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만큼 산업디자인이 「시대성」이 요구되는 분야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입니다.』-金교수의 전문분야인 시각디자인은 그중 어떤 분야입니까.
『포스터.책표지.카탈로그나 기업의 로고를 생각하면 쉽지요.또만화의 애니메이션,영상필름의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등 다양한 분야를 취급합니다.크게 보아 음(音)만 빼고는 전부 시각디자인의영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데 전문가로서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실은 20여년전부터 이미 부르짖었던 이야기입니다.69년인가요.우리나라 수출상품의 포장이 형편없다고 해서 당시 상공부의 의뢰로 세계 10개 선진국을 돌며 조사한 적이 있어요.그런데 와이셔츠부터 오징어 포장까지 가장 싸면서도 가장 초라한 제품을집어들면 그게 한국상품이었어요.당시만 해도 기업주들은 디자인에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어요.최근들어 고부가가치화하지 않으면 상품이 제대로 팔리지 않으니까 기업들도 점차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지요.정부 정책도 한사람 이 나서서 되는게 아닙니다.
주변환경 조성이 중요하지요.산학(産學)협동도 이뤄져야 하고요.
이런 의미에서 3,4년전부터 정부 주관으로 교수들이 나서 중소기업의 디자인을 현장지도해온 것은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디자인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선진국은 물론 대만.싱가포르등 경쟁국에 비해서도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많이떨어졌다고 하면 정부나 관련 학계.업계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비판이 나올테고,그렇다고 절대로 앞서 있지는 않고….예를 들어 말하지요.국산차(茶)를 보십시오.일본차에 비해 맛 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 전에 우선 포장을 보면 왠지 삭막한 느낌부터 듭니다.반면 일본차는 포장의 문양이 얼마나 다채롭습니까.상품은 그 회사 사장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사는 겁니다.그런데 우리는 A안이 더 좋아도 사장이 B안을 고르면 B안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사장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지 구매자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디자인이 선진국보다 모두 낙후돼 있다는 것은 아니예요.심벌과 로고등 일부분야에서는 뛰어난 디자인도 많이나오고 있지요.그러나 디자인하면 역시 미국.일본입니다.여기에 비하면 「많이」가 아니라 「많-이」 떨어져 있습 니다.』 -국내 디자인의 낙후성과 그 원인을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지요. 『제가 20년전부터 정부에 권유해온 것이 있는데 도무지실천이 안됩니다.김포공항으로 가는 도로에 설치한 공항표지판이에요.한글이나 영어로 쓰는 대신 비행기 그림으로 바꾸자고 권유했지요.이 도로에서는 보통 주행속도가 1백㎞가 넘을텐데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까.대만.일본.영국등은 비행기 그림 하나만 달랑 그려놓았습니다.전문용어로 「픽토그램(Pictogram)」이라고하는 거지요.(다소 격앙된 어조로)남이 하는 것 흉내도 못냅니까. 명동에 나가 가로등 유리가 시커멓게 절어붙은 모습을 보면창피한 생각이 듭니다.디자인은 주변환경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이런 점에서 압구정동에 설치한 유리로 만든 버스승차대는 평가할 만합니다.』 ***비행기그림 표지판 설치를 -국내 디자인이 낙후된 데에는 정부.기업.학계.국민등 총체적 관심부족이 근본원인이라고 봅니다.특히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습니까.
『제조업체 사장들이 빨리 디자인에 눈떠야 합니다.제품디자인에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사장이니 사장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지요.최고경영자의 디자인에 대한 마인드와 그 결단이 요체지요.최고경영자가 해외의 좋은 디자인을 직접 접해봐 야 합니다.어렵지 않아요.선진국의 좋은 디자인은 고급백화점에 다 있어요.도서관이나 특별한 곳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접한 거리에있습니다.』 -사장들을 외국의 고급백화점에 내보내 쇼핑을 많이하도록 해야겠군요(일동 웃음).산업디자인은 예술과 공학(엔지니어링)의 접합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디자인학과가 미술대에 소속돼야 좋은지,혹은 이공계 대학에 소속돼야 좋은지 논란이 있 는것 같은데요.
『선진국에서는 디자인학과가 사립대나 전문대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아요.우리나라는 주로 종합대에 속해 있지요.사립대 소속이면 재단에서 보조만 해주면 얼마든지 좋은 설비와 교수를 갖출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요.이공대와 미술대의 문제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디자인의 최종승부는 아름다움에서 결정됩니다.따라서 과학적인 면은 공대의 신세를 좀 지더라도 미술대에 속하는 편이 이점이 많을 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해주시지요.디자인으로 일생을 걸어오셨는데 후회는 없습니까.디자인에 입문하시게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만족합니다.어릴 때부터 숙명적이라고 생각했어요.제자를 양성하고 작가로서 활동하는 것이 즐겁습니다.예능 소질은 타고나야 합니다.어릴 때부터 학예회나 미술시간이 즐거웠고 「커서 미술대에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저도 미술을 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새로운 학문을 해보자는 뜻에서 응용미술과를 택했습니다.』 -성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3년 동안은 미술을 그만두고 성악가가 되려고 죽어라고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전문레슨(지도)까지 받았거든요.테너를 해보려고 했지요.그런데 몇년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파바로티의 내한공연을 보고 포기해 버렸습니다 .기가 질렸던 거지요.테너는 볼륨 그자체로 평가를 받는 것인데 도저히 체격조건에서부터 안되겠다 싶었지요.그렇지만 지금도 「그네」같은 우리 가곡을 즐겨 부릅니다.』 ***조형등 기초부터 익혀야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창작해 오셨는데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88서울올림픽 문화포스터」「우정 1백주년 기념 민속우표」등입니다.민속우표는 외국에 수출까지 돼 장관이 점심을 사기도 했습니다.「굳 디자인이 굳 비즈니스(좋은 디자인은 곧 좋은 사업과 직결된다)」라는 말이 있지요.』 -컴퓨터에도 조예가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 디자이너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요즘 젊은 학도들은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요.그렇지만우선 조형등 기초 소양을 충실히 닦은 뒤 컴퓨터를 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저도 3년전부터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40~50대 교수들도 보다 좋은 작품창작을 위해선 신세대들과 벽을 허물고 컴퓨터를 배워야 합니다.컴퓨터를 알면 시간과 품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거든요.그러나 좋은 디자인은 마우스나 키보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일본의 경우 디자인학교에 입학 해 기초적인 미술소양을 닦기까지 1년정도는 아예 컴퓨터를 가까이 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정부 의뢰를 받은 우표디자인과 개인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평생 기억이 될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제나이 만70세가되는 내후년에 해외에서 열 계획인데 작품 소재는 물론 한국적인전통문화입니다.또 제가 가톨릭신자여서 서울 시 내 여러곳 성당의 제단 디자인도 맡고 있습니다.』 -자녀들도 디자인을 합니까. 『1남2녀예요.큰 딸은 그래픽,작은 딸은 순수미술을 하고 있고 아들은 도쿄(東京)에서 영상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어쩌다보니 저와 비슷한 계통으로 들어선 셈인데 어릴 때부터 저를 보고 자란 환경탓이겠지요.맹모삼천지교가 꼭 맞는 이 야기입니다.』 [정리=임봉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