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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대기업도 돈가뭄…어음이 다시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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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업계의 ‘상생경영’ 인심도 곳간이 넉넉할 때나 가능한 걸까. 비즈니스 환경이 빡빡해진 탓에 대기업의 어음결제 관행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현금으로 하던 중소 협력업체 납품결제를 어음으로 바꾸는 대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 ‘마른 수건 더 짜라’는 해묵은 긴축 구호도 업계에 번진다. 최근 골프회원권 값이 급락하는 건 자금난으로 법인회원권을 대거 처분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금융 불안이 이제 기업을 포함한 실물경제 전반으로 번져나가는 징후다.

◆10대 그룹에 어음 부활=국내 10대 기업집단 계열로 매출 1조원이 넘는 A사는 이달 들어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 조건을 바꿨다. 납품 받은 뒤 20일 안에 전액 현금으로 결제해 주던 것을 납품 후 한 달 안에 만기 석 달짜리 어음을 주기로 한 것. 회사 관계자는 “매출과 이익이 줄어드는 가운데 해외 자금시장까지 얼어붙어 어쩔 수 없이 자금부담을 협력업체와 나눠 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바람에 이 회사 거래업체들도 덩달이 운영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이 대기업 어음을 금융시장에서 할인받아 현금화하기가 쉽지 않다. 어음 발행 업체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 돌기 시작한 탓이다. B협력사 관계자는 “은행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에서도 회사 어음이 잘 통하지 않아 그냥 금고에 넣어두고 만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A사처럼 금융불안으로 납품 대금을 현찰로 주지 못하는 곳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이 은행에서 결제 처리한 중소기업 발행 어음은 모두 4조5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6419억원) 늘어난 것이다. 명동 사채시장 관계자는 “유동성을 좀 더 확보하려고 거래업체에 현금 대신 어음을 주는 업체가 늘고 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어음할인 수요가 올 들어 늘어난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영세한 협력업체에 어음을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중소협력업체를 동반자로 삼으려는 대기업이 늘었고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원하는 사회적 여론도 압력으로 작용해 대부분 기업들이 현금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10대 그룹은 현금결제를 해야 한다’는 업계 불문율이 조성됐다. 하지만 근래 사업환경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일부 업체들이 석 달짜리 어음 지급을 재개한 것이다.

◆마른 수건도 쥐어 짜=현금 결제 업체라도 비용절감을 부르짖는 곳이 늘고 있다. 국내 양대 통신회사인 KT와 SK텔레콤도 임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KT는 하반기부터 부장급이 소지하던 법인카드를 회수했다. 또 연간 기본급의 500%이던 성과급을 다소 낮출 것을 검토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김신배 사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비용절감에 예외인 부서는 없다”고 선언하고 부문별로 구체적인 방안을 내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보유 골프회원권을 연말까지 어느 정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설비투자·마케팅에 드는 필수 경비는 확실히 집행하되 기타 낭비 요소를 제거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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