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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법 이야기 - 연쇄살인범 영화 ‘트럭’: 강요된 사체 유기도 처벌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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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12면

연쇄살인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봄 ‘추격자’가 흥행에 성공한 데 이어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가 관객 수 4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25일엔 국산 스릴러 ‘트럭’이 개봉했다. 불황기에는 인간의 악마성을 다룬 영화가 히트를 치는 게 공식이 됐기 때문일까.

생명 위협으로 어쩔 수 없었다면 처벌 안 받아

‘트럭’에서 사기 도박으로 전 재산인 트럭을 빼앗기게 된 철민(유해진)은 자신의 목숨과 딸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폭력조직 보스의 살인 현장 뒤처리를 맡는다. 시체를 싣고 달리던 철민의 트럭을 막아선 것은 연쇄살인범 영호(진구). 이때부터 철민의 진퇴양난 스토리는 속도감을 높이기 시작한다. 시체를 실어 나른 행위는 법률적으로 사체유기죄(형법 162조)에 해당한다. 또 도주 중인 연쇄살인범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범인은닉죄(형법 151조)로 처벌받게 된다.

두 경우 모두 형법상 ‘강요된 행위’로 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형법 12조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危害)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해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용성(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철민의 행동을 ‘강요된 행위’로 볼 여지가 있지만, 판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어쩔 수 없이 한 때’로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목적이 자신의 목숨보다 딸 수술비였다면 사체유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철민은 영호가 저지르는 제2, 제3의 살인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철민은 영호가 반항하는 청년과 뒤엉켜 싸울 때 영호의 머리를 돌로 내리친다는 것이 그만 청년을 쓰러뜨리게 된다. 강동욱(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상해의 고의가 있었던 만큼 상해죄나 상해치사죄가 성립할 것”이라고 말한다. 강 변호사는 다만 “과잉방위로 인정되거나 정상 참작을 받아 형이 대폭 감면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인다.

영화 ‘트럭’

영화에 나온 장면은 현실 속의 연쇄살인과 얼마나 가까울까. 영호가 철민의 트럭에 올라탄 것은 우연이었지만 트럭은 범행·도주 수단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트럭이 주는 위압감에 많은 것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란 점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트럭이 연쇄살인에 쓰인 사례는 거의 없었다. 1종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는 데다 다른 차종보다 쉽게 추적당할 수 있다. 연쇄살인범들은 보통 크기의 승용차를 애용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범행에 트럭을 이용한 살인범은 1975~80년 영국에서 13명의 여성을 살해해 ‘요크셔 리퍼(Yorkshire ripper)’로 불렸던 피터 수트클리프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팁 하나 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다크 나이트’에서는 “앞면이냐, 뒷면이냐” 동전 맞히기 게임을 해서 살인 여부를 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생사를 놓고 도박을 벌인다는 점에서 관객의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벌인 연쇄살인범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정도의 정신적 여유를 가진 살인자는 ‘사이코 패스(이상 인격자)’인 연쇄살인범이 아니라 ‘전문 킬러’로 분류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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