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콩팥질환, 혹시 멜라민 때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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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15면

중국산 ‘멜라민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신장결석과 급성신부전 등의 증세로 사망한 사건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가운데 24일 대만의 한 병원에서 어린아이가 신장결석을 검사하기 위해 채취한 자신의 소변 샘플을 보고 있다. 대만 로이터=연합뉴스

25일 경희대 병원 소아청소년과 외래진료실. 중학교 1년생 임경철(13·가명)군의 콩팥을 찍은 X선 사진에 결석이 다섯 개나 나타났다. 단순히 혈뇨만 약간 비쳤을 뿐 통증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임군의 부모는 화들짝 놀랐다. 대뜸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가 과자를 좋아하는데 혹시 중국산 분유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요즘 중국발 멜라민 식품 사고가 내습하면서 생긴 걱정의 한 단면이다. 또 다른 환자 박모(8)군. 초등학교 집단 요(尿)검진에서 혈뇨와 단백뇨 수치가 높아 부모와 함께 내원했다. 역시 멜라민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징후가 멜라민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신장결석 분석해 보면
신장결석 환자를 보자. 아이들이 웬 결석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신생아에서 중·고생까지 고루 발생한다. 경희대 병원 조병수(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콩팥질환을 의심해 내원하는 어린이 환자 50명 중 1명은 결석 환자”라고 말했다. 가장 흔한 원인은 감염. 세균이 들어가 신장에 염증이 생겨 석회화한다. 다음은 원인 불명, 그리고 셋째는 칼슘이 잘 만들어지는 체질이 발병 요인이다. 조 교수는 원인 불명인 경우 식품과의 관련설을 의심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이정원(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결석은 칼슘이나 요산으로 구성돼 있다”며 “성분에 따라 결정체가 다르기 때문에 분석해 보면 멜라민 관련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설령 아이가 결석이 생겼더라도 국내 의료 수준이라면 걱정은 유보하는 것이 좋다. 큰 돌은 체외 충격파 쇄석기로 부숴 배출시키고, 작은 돌은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어린이 결석도 대체로 치료가 잘 된다”며 “중국에서 아이들이 사망한 것은 병이 진행돼 신장 조직(사구체)이 손상돼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구체(네프론)는 가는 실타래처럼 생겼다. 마치 나무 줄기에서 가지로 나눠지듯 혈관이 분화된 모세혈관 덩어리다. 혈액에 들어 있는 노폐물은 이 사구체를 통과하며 걸러진다. 이 실타래는 한 개의 콩팥에 100만 개나 있다. 콩팥 두 개의 200만 개 사구체를 연결하면 길이는 무려 220㎞. 하루 거르는 혈액량만도 1.5L 페트병 200개분이다. 조 교수는 신장이 망가지는 과정을 고목나무에 비유한다. 처음 가지만 병들었을 때는 혈뇨만 약간 비친다. 좀 더 진행돼 단백뇨가 생길 때까지도 증상은 없다. 하지만 나뭇가지의 절반이 망가지면 통증을 비롯해 요독증과 관련된 부종·다뇨·혈뇨 증상이 나타난다. 결국 나무는 회생불가 진단을 받고 고사한다는 것이다.

증상 없어 방치하기 일쑤
사구체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안 된다. 하지만 초기에 적극 치료하면 남은 사구체만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다행히 1998년 시작된 청소년 집단 요검사로 많은 학생이 조기에 신장질환을 발견하고 있다. 조 교수는 “500원도 안 되는 소변 검사비로 5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성신부전으로 진행할 경우 한 명의 환자가 평생 혈액투석으로 쓰는 돈이 이 정도라는 것. 현재 혈액투석 대상자는 6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성인의 경우 만성신부전의 원인으로 고혈압·당뇨병·사구체신염을 꼽는다. 하지만 어린이 신장질환은 급성 사구체신염이 가장 많다. 소아신장학회에 따르면 전체 소아신부전의 3분의 1이 사구체신염이 원인이다. 감기나 편도선염 뒤끝에 발병한다. 연쇄상구균이 신장의 사구체에 침범해 기능을 마비시킨다. 원인 불명도 많다. 사구체가 노폐물을 걸러내는 장치인 만큼 불량식품과 같은 먹거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후 관리로 조기 봉합을
만성신부전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는 중·고생을 포함해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가볍게 여길 질환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리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조 교수는 “20%는 정상이거나 비뇨기질환 때문에 단백뇨나 혈뇨가 나타난다”며 “신장염을 앓고 있는 80%도 치료 결과가 좋지 않은 악성 사구체신염은 드물기 때문에 조기 발견만 하면 완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부모는 평소 아이의 증상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사구체신염은 감기가 많은 환절기에 주로 발생한다”며 “대표적 증상으로 오줌 누는 횟수나 양이 줄어들며, 눈 주위가 붓는 부종과 미세한 혈뇨도 있다”고 강조했다.

요검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초음파나 혈액검사는 사구체가 50% 이상 손상될 때까지 정상으로 나올 수 있지만 혈뇨와 단백뇨에선 잡힌다. 성인 신부전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당뇨병과 고혈압의 유병률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의 사구체가 쉽게 손상되는 것은 설탕물처럼 걸쭉한 혈액이 모세혈관을 막아서다. 고혈압 역시 혈관에 걸리는 압력이 사구체 손상의 원인이다. 말기 신부전은 암보다 더 무섭다. 대한신장학회가 20년간 혈액투석 환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5년 생존율이 39.9%로 암환자 45.9%에 훨씬 못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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