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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시장 새 판 짜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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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30면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시장 구도를 근저에서 흔들어 놓고 있다. 세계 제1경제대국, 최대 금융시장, 각종 이노베이션(기술 혁신) 1번지로서 미국의 위상은 변함없겠지만 새로운 시장의 주역과 금융파워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은 다원화·다자간 구도로 재편되는 게 불가피해졌다.

금융시장의 구조 개편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세계 금융자산은 1980년 12조 달러로 그해 세계 전체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엇비슷했다. 2007년 세계 금융자산은 195조 달러로 추정된다. 2007년 세계 GDP(55조 달러)의 3.5배다. 글로벌 자본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금융 심화현상이 급격화됐음을 의미한다.

금융자산 구성도 크게 달라졌다. 80년 금융자산의 80% 이상은 예금이었다. 2007년엔 예금은 30% 미만이고, 주식과 민간 및 정부 채무증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국경을 넘어 서로 얽혀 있다. 국채는 3분의 1이, 주식 지분은 4분의 1이, 민간 채무증권은 5분의 1이 발행 국가 바깥의 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시장의 주역(player)도 연기금·보험은 물론이고 헤지펀드·사모펀드와 각국 중앙은행, 국부펀드, 정부투자공사, 정부 관리기업 등 민관 또는 그 혼합형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여기에 유럽과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러시아, 중국 등 아시아 무역 흑자국들이 새로운 금융파워로 부상하면서 구조 개편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시장의 구성과 주역들, 그 파워와 돈줄이 다변화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게임 룰 또한 재정립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가장 큰 돈줄은 중동,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바레인·오만·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만 연안 6개 석유 부국(GCC)이었다. 고유가에 따른 막대한 오일머니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투자로 곧 환류됐고, 한때 미국 경상적자의 25%를 이들 오일머니가 메워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일머니는 자국 개발과 중국·인도 및 아프리카 국가 등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방향을 돌렸다.

세계 수준의 첨단 도시 건설과 초일류 인재 유치는 물론 이자와 투기를 부도덕시하는 16억 무슬림의 이슬람 금융 규모를 2010년까지 1조 달러로 키워 세계 금융 시스템의 한 허브를 노리고 있다.

제2경제대국 일본의 금융 그룹들이 공격적으로 미국 투자은행 인수에 뛰어든 것도 예사롭지 않다. 풍부한 유동성과 자금력으로 선진 금융의 노하우·인력과 고객 네트워크를 물려받아 금융 강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막강한 제조업에 강한 금융산업이 날개를 단다면 일본의 태양은 또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 돈은 있지만 아직 경험과 실력이 모자라고 ‘잠재적 적대국’으로 미국의 견제가 심해 속을 끓이는 실정이다. 그러잖아도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투자로 중국 국부펀드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국경을 넘어 자본을 조달하고, 위험을 분산시키고, 그를 통해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순기능이 크다. 하지만 시장이 심화될수록 예측이 힘들어지고 투명성이 흐려지는 폐단이 있다. 이를 남용 또는 오용하고 감독을 소홀히 한 데서 이번 위기가 빚어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금융 규제 대국’이나 경제민족주의로 복귀한다면 이야말로 시대의 난센스다. 합리적이고 신뢰성 있는 글로벌 룰을 확립해 자유시장 시스템이 다자주의 틀 속에서 잘 작동되도록 새로운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리스크 관리를 효율화하고 규제의 틀과 규제 기관의 업그레이드도 물론 포함된다.

이번 기회에 국제통화기금(IMF)의 목적도 지금의 통화 관리 위주에서 금융 거래 투명성 강화와 신용평가기관 활동 감시, 글로벌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 쪽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독립적 투자은행은 간판을 내려도 투자은행업은 없어지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계속 업그레이드되게 마련이다. 세계 금융시장 구도 개편은 금융 선진화를 통해 금융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국가들에 좌절이 아닌, 일대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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