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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리더① 연꽃마을 각현 스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호 31면

윤동주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와 했다”고 노래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괴로웠던 사람들 중엔 각현(覺賢·64) 스님도 있다. 그는 아픈 이, 굶주린 이, 늙어 가는 이, 죽어 가는 이를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연민에 몸부림을 치던 그런 사람이었다. 각현 스님이 스물네 살 출가 때 “미친놈” 소릴 들은 건 이 때문이었다. 선배 스님의 ‘너는 왜 중이 되려는가’라는 질문에 각현은 “세속에 있으면 남을 돕는 일에 전념할 수 없다. 출가해 더 많은 분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선배 스님 왈, “미친놈일세. 자기 문제 때문에 출가한 게 아니라 남 문제 때문에 출가하다니….”
그러고는 쏜살같이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뿌린 씨앗으로 세상 이뤄져, 겸손하게 사세요

각현은 지금 서울·대구·인천·경기도 지역 40여 곳에 흩어져 있는 노인복지시설 ‘사회복지법인·의료법인 연꽃마을’의 대표이사다. 203병상의 파라밀병원을 품고 있는 안성 연꽃마을에 치매·중풍 노인 200명이 요양 중인가 하면, 호수공원 안에 있는 일산노인종합복지관은 하루 3000명이 노래·춤을 배우거나 자서전 쓰기같이 삶에 찌들어 하지 못했던 것을 해 보기 위해 찾아들고 있다. 전국 연꽃마을을 1년간 이용하는 노인 수는 약 400만 명이라고 한다.

1 각현 스님이 경기도 안성 연꽃마을 정원에 서서 넉넉한 웃음을 짓고 있다. 2 요양 중인 노인들이 정원에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3 다리가 불편한 한 입원 환자가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신인섭 기자

각현은 선방에서 참선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도 생활의 화두는 강렬하다. 늙어 가는 것, 죽어 가는 것이 그의 일생을 꿰뚫는 화두다. 각현은 김문수 경기지사의 부탁으로 경기복지미래재단 대표이사란 직함도 갖고 있다. 23일 오후 수원의 경기복지미래재단 사무실과 24일 오전 안성 연꽃마을 감로당에서 각현 스님을 만났다. 안성 연꽃마을에선 마침 요양하는 노인들을 상대로 화요일마다 열리는 ‘웰다잉 교육’이 진행 중이었다. 다음은 이틀간 영혼의 여행에서 각현 스님이 기자에게, 또 웰다잉 교육장에서 한 법어 요지다.

저는 40년 출가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불교 교리에 회의를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불교의 교리는 완벽하고 철저하게 삶과 생명의 문제를 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지요. 험한 시대 고독과 번민, 불안과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줍니다. 어떤 메시지인가. 인과(因果)의 메시지입니다. 모든 일에 원인이 있습니다. 한탕주의가 세상에 만연해 있지요? 많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길 바라며 살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다 내가 뿌린 씨앗으로 사는 겁니다. 인과로 움직이는 원리를 불교에선 연기법(緣起法) 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선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지요. 그러나 불교의 진리는 연기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연기법은 여래가 출현하든지 하지 않든지 항상 존재한다. 여래는 이 법을 깨달아 중생을 위해 연설할 뿐이다.”(『잡아함경』)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멸하므로 이것이 멸한다. 이런 연기 관계의 우주적 원리가 인드라망입니다. 인드라는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신을 뜻하는 제석천(帝釋天)입니다. 제석천이 중생에게 던져 놓은 그물이 인드라망이지요. 한쪽을 잡아당기면 반드시 반대쪽이 흔들립니다. 두두물물 만생명체가 다 인드라망에 걸려 있어요.

인드라망에 낚싯바늘처럼 걸린 존재
우리가 너나없이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내가 고독하고, 외롭고, 불안한 것은 어딘가 다른 쪽에서 그렇게 만드는 무엇이 있어서입니다. 나의 문제는 남에 의해 결정됩니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을 고독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란 존재가 인드라 그물망에 낚싯바늘처럼 걸려 있기 때문이죠. 내가 욕심 내고 불안하고 흔들리면 그물의 다른 쪽에 있는 사람이 똑같이 흔들립니다. 그물의 파장은 지도자일수록 더 큽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나 의사결정자들은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원리를 깨닫고 실천하면 매일 매일이 행복합니다. 지혜로운 삶입니다. 불교의 목표인 니르바나, 해탈의 경지입니다. 도인이 산골짜기에서 10년을 면벽하고 진리를 구한다고 해도 거기에 진리가 있는 게 아니지요. 이미 연기법은 우주와 생활 속에 편만해 있습니다.

지혜의 삶은 곧 조화의 삶입니다. 타협의 삶입니다. 승자 독식, 전부 아니면 전무의 이분법적인 삶으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금융이 무너진다고 하는데 그것도 미국이 세계를 향해 독식과 욕심을 부리다가 생긴 결과 아닐까요. 금융자본주의는 탐욕의 시스템이에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지혜롭게 받아들이십시오. 노인은 생로병사의 집합소, 저수지 같은 존재입니다. 늙음과 병듦은 봄에 새싹 돋고, 여름에 녹음 푸르고, 가을에 낙엽 지고, 겨울 가지가 앙상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제 후기 고령사회가 되면 인생에서 늙고, 병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럴 때 절대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젊고 건강할 땐 남을 도와야 합니다.

20년은 도와주고 20년은 도움 받고
아기가 “응애-” 하고 태어나 아장아장 걷다가 초·중·고를 마칠 때까지 20년은 부모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가 늙으면 아기가 거쳤던 과정을 똑같이 반복합니다. 머리가 허예져 지팡이를 짚다가 드러누울 때까지 20년은 자식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지요. 그게 연기적인 가족의 삶입니다. 효의 원리지요.

아, 그런데 그걸 자식들이 못해 주는 시대가 됐습니다. 슬프게도 인과적 삶, 연기적 삶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드라망의 한쪽이 뚫렸다고나 할까요. 인생살이가 뻔해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거부든 촌부든 늙고 병들면 거들먹거릴 거 하나도 없는데…. 자식이 못해 주는 효를 사회가, 나라가 대신해 줘야 합니다. 이게 공적 보장제도죠.

각현 스님은 1990년 공적 보장시설을 민간의 힘으로 만들어 불교계를 놀라게 했다. “불우 노인의 안식처를 불자들이 마련하자”는 슬로건으로 1000원 후원금 아이디어를 내 2만5000명한테 5억여원을 거둬 ‘용인요양원’을 세운 것이다. 그때 시작된 연꽃마을 운동이 지난여름 치매·중풍 전문병원인 안산 파라밀병원 개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스님은 인터넷에서 퍼 온 다음과 같은 글을 읽으며 웰다잉 교육을 마쳤다.

여보시오. 돈 있다 유세하지 말고/공부 많이 했다 잘난 척하지 말고/건강하다 자랑하지 마소. 명예 있다 거만하지 말고/잘났다 뽐내지 마소. 다 소용없더이다. 나이 들고 병들어 자리 누우니/잘난 사람 못난 사람 너나 할 것 없이/남의 손 빌려서 하루를 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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