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혁 개방-'이중전략'과 실리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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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북한이 임금과 가격을 대폭올리는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북한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농민시장이 ‘종합시장’으로 바뀌어 공업제품과 각종 수입품들이 거래되고 있고,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는 모습은 이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거리 여기저기에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의 노동자들은 월급이 깎이고, 지배인은 자리를 내놓아야 할 상황이 됐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가 시장개혁으로 나갈 것인지, 전통적인 계획경제를 보완하는데 그칠 지를 두고 북한전문가들 사이에도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영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전임연구원이 펴낸 이 연구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둘러싼 논쟁을 한단계 진전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연구의 주류를 이룬 정치학이나 경제학이 아닌 사회학 측면에서 접근한 것도 눈에 띈다.

정 연구원은 이 책에서 북한이 시장기능을 도입하고, 가격 체제를 개혁함으로써 초기 중국식 개혁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군정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정치방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북한이 경제영역에서는 개혁·개방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사상·정치·군사 등의 영역에서는 개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이중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의 개혁조치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후 1998년부터 시작된 개혁조치가 ‘체제내 개혁’의 단계였다면, 2002년의 개혁조치는 ‘체제의 개혁’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고 결론 짓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북한이 고수해온 배급체계가 ‘현물배급체제’였다면, ‘체제의 개혁’ 단계에서는 ‘화폐배급체제’로 변화한 점에 주목한다. 국가의 배급에 의존하던 생활에서 이제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소득을 내고 소비생활도 스스로 꾸려나가야 하는 주민생활의 변화상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북한은 스스로의 변화를 ‘실리 사회주의’라는 부르지만 저자는 이 용어가 “중국의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혹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연상케한다”며 ‘실리 사회주의’가 오늘날 북한 사회주의의 성격 변화를 보여주는 핵심 용어라고 파악한다. 북한의 ‘실리 사회주의’가 “중국형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북한식 실험이라는 성격을 갖는다”는 게 정 연구원의 주장이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을 변화로 한발자국 더 내딛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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