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기가수 구보타 영어곡 국내발매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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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애틀랜타 올림픽에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던 지난달 하순,꽤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음반 하나가 슬그머니 시중에 등장했다. 일본자본의 직배음반사인 ㈜소니뮤직이 발매한 일본의 정상급 가수 도시 구보타(본명 구보타 도시노부.久保田利伸.34)의 『선샤인,문라이트』.
이 음반은 수록된 14곡이 모두 영어가사이기는 하지만 일본태생에 일본국적을 갖고 있는 가수의 목소리를 담은 채 합법적으로발매된 것으로 전례가 거의 없어 『일본 대중음악 개방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입장도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현행법규에 따르면 외국음반물이 국내에서 발매되기 위해서는 공륜의 추천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륜의 원칙은 일본음악에 따로 명문규정을 두지는 않았지만 전통가요인 엔카를 포함해 일본어로 된 노래는 국내발매를 불허한다는 것. 때문에 구보타의 음반처럼 영어가사로 돼 있고 일본색이짙지 않다면 「합법적」으로 출시할 수 있다(사실 솔.레게등 흑인음악 일색인 구보타의 음반은 내용만으로는 미국가수의 음반과 구별이 힘들 정도로 일본색이 전혀 없다).
공륜 관계자는 『3~4년전까지는 연주곡이나 영어가사라고 하더라도 일본인이 작곡했거나 노래를 불렀다면 「절대불가」였다』며 『앞으로는 정부의 세계화정책과 단계적인 일본문화 개방방침에 따라 규제를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이 음반을 발매한 소니뮤직은 지금까지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음반을 출시하면 광고.홍보등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전개하는 게상례지만 이 음반에 대해서만은 일체의 홍보활동을 자제하고 있다.자칫 『외국계 음반사가 일본음악 개방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수입 음반이나 복사판 또는 가라오케.노래방등을 통해 이미 일본음악에 친숙해진 젊은층을 중심으로 통신주문이 만만찮게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 음반의 발매는 소니뮤직의 치밀한 장기계획에 따라 이뤄졌다. 소니의 한 직원은 『지난해 주한 일본대사관에 일본음악발매에 관해 자문하기도 했다』며 『일본외상 이케다의 망언과 독도영유권 문제등으로 국민감정이 악화된 시기를 피해 발매를 연기해 왔다』고 말했다.
소니는 구보타의 음반에 이어 한국에도 잘 알려진 3인조그룹 「드림 컴 트루」와 몇몇 가수들의 편집음반등 영어로 취입한 일본가수들의 음반을 잇따라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음반업계에서는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라는 변수가 일본음악 개방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소니와 ㈜삼포니등 일본계 또는 한.일 합작 음반사를 중심으로 준비작업을 진행중이다.
다만 그 시기는 음반업계의 희망과 상관없이 고도의 정치적.외교적 결정에 달려 있다.
개방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일본측으로부터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얻어낼 수 있는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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