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作을찾아서>조은씨 두번째 시집 "무덤을 맴도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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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인은 자신의 심신을 얼마만큼 괴롭혀야 시어(詩語) 하나를 얻어낼 수 있나.그렇게 얻은 시는 독자에게 어떤 감동을 불러일으키는가.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아니 도대체시란 무엇인가.독자들에게 시 자체로 이런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시집이 한권 나왔다.조은(36)씨는 최근 두번째 시집 『무덤을맴도는 이유』를 펴냈다(문학과지성사刊).
『벼랑에서 만나자.부디 그곳에서 웃어주고 악수도 벼랑에서 목숨처럼 해다오.그러면 나는 노루피를 짜서 네 입에 부어줄까 한다.//아,기적같이/부르고 다니는 발길 속으로/지금은 비가…』(『지금은 비가…』전문).
88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한 조씨는 91년 첫시집 『사랑의 위력으로』를 펴내며 비범한 시혼(詩魂)과 이미지로 문단에 묵중한 울림을 주었다.위 시에서도 보이듯 목숨의 극한,그 「벼랑」에서 길어올린 시어가 관습에 갇힌 우리네 삶과 사물을 아연 새롭게 돌려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시집의 「벼랑의 시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두번째 시집에서 조씨는 「무덤의 시학」으로 가고 있다.
『저렇게 몸이 부서져야/풀 한 포기라도 꽃피울 수 있으리라/저렇게 몸이 나락에 닿아봐야/뿌리 있는 것들의 우매함을/이해할수 있으리라 또/저렇게 번개 치고 광기로 흘러넘쳐야/먼 곳까지꽃피우며 흘러갈 수 있으리라//제 몸을 허공에 다 한 순간의 무지개로/내거는 것도 아름다우리』(『비』전문).
자신의 몸을 짓찧는 자학,나락으로 몰고 가는 절망,그리고 광기등.흔히 시인을 수식할 때 「특권」처럼 쓰이는 말이다.그러나그러한 특권을 온몸으로 지키는 시인들은 드물다.혼신을 다해 길어올린 언어로 사물 자체를 꽃피워 새 세상을 열 어보이고 우매한 일상의 뿌리를 박차고 오르며 우리네 삶 또한 무지개같이 아름답고 신비스럽다고 일러주는 시를 보기는 드물다.시인 조씨는 이러한 시인의 특권을 괴롭게 누리며 우리 시대에도 시혼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 몸이 빨리 썩어 흩어지도록/이승의 단맛을 가득 채워 묻어다오./내가 풀 한 포기나 나무 뿌리에 기대어/미련스럽게 이세상으로 다시 오지 못하도록/스무 길 땅속에다 깊이 묻어다오.
/스무 길의,흙을,잘 구운 기와처럼,내게 얹어다 오.//삶이여,죽음에 닿아보는 이 순간은/너도 내게서 쉬고 있구나!』 시 『묘비명』에서 시인은 철저하게 자신을 매장시키고 있다.이러저러한 이승의 단맛이 미련스럽게 살아나오지 못하도록 깊이 묻고 기와까지 얹어버린다.그리고 오로지 순수 혼으로서만 삶을 둘러보며순수의미를 찾고 있다.이렇게 찾아진 의미들 은 시인과 세상을 일치시키며 새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아니 일상의 관습에 갇힌 세상과 사물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이 때라야만 시는비로소 창조의 행위가 된다.
그리고 언어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시는 소설도,영화도,연극도,또 우리의 삶 자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술의 에스프리가 된다.
조씨의 좋은 시들은 이러한 시의 존재이유를 그대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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