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新좌익과 舊보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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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통일축전을 벌이겠다며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한총련의 8.15시위는 강경진압으로 막을 내렸다.학생들의 폭력집회가 이번만큼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그만큼 사회 상황은변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이념조직은 여전히 전(前 )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때 자기들 딴은 반정부적 방향으로 영향을미치겠다며 선거 전날 죽은 학생의 장례시위를 감행했다가 오히려보수적인 중산층으로 하여금 정부 지지로 돌아서게 만들었던데서 바로 그들의 경직된 논리와 전술은 이미 한계를 드러낸바 있다.
그들의 과격을 넘어선 폭력투쟁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못하고 사멸(死滅)해가는 조직의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고,또「남반부의 소요」상황을 정권안보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정권의 말기적 전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은 해방직후 북쪽의 공산정권 수립에 하수인 노릇을 하던 좌익의 초라한 변형에 지나지 않는 신좌익(新左翼)친북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세력들이 계속 온존할 수 있었던 대학의 분위기,사회의 분위기일 것이다.
신좌익그룹들은 진보적 세력으로부터 과격하긴 하지만 통일 추진세력으로 대접받았다.이들이 반체제행위나 폭력시위로 잡히더라도 대단한 「양심수」나 되는 것처럼 떠받들어졌다.학생이 과잉진압으로 다치거나 하면 열사(烈士)니,민주투사니 하여 대대적으로 추모행사가 벌어지곤 했다.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인사들과 야당 정치인들은 이들 「양심수」의 석방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재야세력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영합과 교수.지식인들의 눈치보기,어쭙잖은 개방성이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이었음 은 부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우리는 중요한 몇가지를 상실했다.
첫째는 법질서와 사회기강의 상실이다.학생이 다치거나 하면 큰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며,잡히더라도 곧 다시 석방될 것이므로 그들을 다루는 일은 「정치적」으로 해석돼야만 했다.공권력 행사는 항상 정치적으로 왜곡됐다.
두번째는 이념의 혼란이다.자유민주주의적 관용과 진보세력에 대한 개방성은 동일한 것으로 착각됐다.북한정권과 구호를 같이하고그들과 팩스를 주고받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것들을 용인하는 것이 마치 자유주의적.진보적 개방성으로 오인되곤 했다는 말이다.지난날 군사정권시절 반정부투쟁 대열에 함께 참여했었던 반체제 세력을 무분별하게 집권당이 수용해버린 것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의 하나일 것이다.
한총련사태에는 분명히 이념문제.통일문제가 개재돼 있긴하다.
그러나 그들을 다루는 방식은 이념문제와 법질서-공권력의 문제를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는 폭력문제,시민들의 발목을 잡고 도심교통을 마비시키는 사회질서의문제는 그들의「이적성(利敵性)」과는 별도로 다뤄 야 한다는 것이다.법과 질서의 문제에 이념성을 뒤섞으면 사태가 또 「정치적」이 되고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우익이든,좌익이든 준엄하게 대처해야 한다.일부 진보적지식인이나 종교.사회단체의 「양심수론」도 차제에 재고되지 않으면 안된다.대학이 좌경폭력의 아지트가 되도록 허용해서도 안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혼란상황을 이용한 구보수(舊保守)-5공 잔당과 극우세력의 복권기도다.이들은 한총련의 폭력사태를 대뜸 정부의 대북(對北)정책 탓으로 몰아가려 한다.
한총련의 폭력시위가 마치 대북 온건론 때문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정부의 일관성을 잃은 대북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곧 한총련의 폭력사태를 낳은 원인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번 사태가 결코 대북정책 강경선회의 기회로 이용돼서는 안될것이다.이번 사태의 본질은 이념성으로 위장한 공권력에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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