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한마당의 정치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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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이번주 4일동안 미국은 온통 샌디에이고에만 관심있는 것처럼 보였다.텔레비전방송은 아침.저녁.심야에현장중계로 처리했고 신문지면도 관련보도로 잔칫집 같았다.참가 대의원 1천9백명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이 집 회에 1만5천명의 보도진이 들끓었고 대회경비로 3천만달러나 들었다.
전당대회의 주임무는 물론 지명전의 종결이다.대통령및 부통령후보를 공식선출하고 정강정책을 채택해 본격적인 선거전채비를 완결짓는 일이다.그러나 전당대회 역할이 그것뿐이 아니다.대회장 밖에서는 주야로 대소 1천건의 파티가 열렸다.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자선기금 모금을 내걸고 경마.리셉션 등 각종 행사를 마련했다.자가용 제트기와 요트를 타고 몰려온 부호들이 연회에 참석해10만달러의 정치헌금을 척척 내놓았고 그만큼 부자가 못되는 사람들도 수천달러 또는 수백달러씩 내 고 파티에 참가해 샴페인과춤들을 즐겼다.
공화당은 이번에 줄잡아 1천5백만달러의 정치자금을 거둬들였다.미국의 전당대회는 「행복한 정치행사」고 집회가 열린 기간은 「기분 좋은 시간」이라는 통념이 재확인된 것이다.
미국의 전당대회가 정치적 긴장과는 거리가 먼 행사가 됐다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집회전에 이미 대통령후보는 사실상 결정나 있고,대회장 안팎에서 간혹 시위나 혼란이 빚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집행부가 분위기 조성용으로 연출하는 것들이다.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통틀어 후보지명경쟁이 전당대회 마지막 날까지 가서야 결판난 것은 76년 포드 대통령과 레이건 캘리포니아주지사 대결이 마지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화당 대회는 작지 않은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당이 새로운 희망감으로 재충전했다는 사실이다.대회직전까지만 해도 공화당은 분위기가 침체돼 있었다.73세의 노령인데다가 캠페인 기교마저 부족한 로버트 도울이 상대당 클린턴 대통령에게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늘 뒤처져 있었다.뿐만 아니라 기독교단체 등 당내 보수우파들이 낙태반대 등 사회문제들에 대한그들의 입장을 거세게 과시함으로써 온건파들과의 갈등을 악화시켜왔다.저간의 당내■ 상황을 감안 하면 도울이 부시행정부때 주택및 도시개발장관을 지낸 잭 켐프를 러닝 메이트로 선정한 것은 당내 이견(異見)들을 포용하고 당의 화합을 과시하는데 매우 유효적절한 판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세금을 삭감해야 한다는게 켐프의 일관된 지론이었다.레이건에게 「공급측면 경제이론」을 제공한 장본인이다.세금을 인하하면 경제부양효과가 나타나 세금이 더 많이 걷힌다는 주장이다.이에 반해 도울은 세출삭감을 통해 균 형예산을 이루는 일이 더 긴요하다는 생각에 시종 투철했다.서로 어울리지 않는 정치인들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결합이 환영받는 것은 공화당이 이산가족 재결합을 연출,대통령선거뿐 아니라 의원선거에도 긍정적 효과를 파급시킬 것이라 는 기대감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대통령후보 옹립움직임을 뿌리치고 러닝 메이트 제의도 거절했던전 합참의장 콜린 파월도 전당대회에는 흔연히 나타나 「포용의 정치」를 강조해 대회중 최대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는가 하면 초강경 보수정책과 독설로 예비선거과정에서 도울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패트릭 뷰캐넌도 도울 지지를 표명했다.94년 상.하원선거에서 모두 승리한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백악관까지 장악하자는 결전(決戰) 앞에 당이 한덩어리가 되는 모습을 성공적으로 과시한것이다. 11월 선거에서 이 다짐이 결실을 맺을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그러나 전당대회 자체는 멋진 게임이었고 보기에 즐거운 페스티벌이었다.선거때마다 반목이 불거지고 정당이 갈라지는 우리의 현실과는 달랐다.정치가 축제가 되는 날이 우리에게 도 빨리 와야겠다는 염원이 한층 더 절실했던 행사였다.
(미주총국장) 한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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