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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토포럼] “국가보다 지역 간 경쟁 시대 … 분권해야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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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보다 어려운 난제가 있다. 지방행정구역 개편이다. 전국 230개 시·군·구를 통합해 60~70개 통합시로 만들고, 전국에는 5~7개 광역청을 두자는 제안이 논란이다. 행정체제 개편은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오던 해묵은 과제다. 핵심은 지방에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백서에 따르면 지방자치를 외치던 참여정부의 분권 진전율은 2%에 불과하다. 권력을 나눠주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23일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소장 곽재원) 주최로 열린 ‘제3회 신국토포럼’에서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은 “국가를 업그레이드하려면 행정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며 “이는 지방자치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지방분권을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본지 편집국 대회의실에서 열린 포럼에서 그는 지난 17대 국회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위 보고서를 토대로 ‘지방행정체계 개편과 관련한 제 논의’란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자들은 “분권 없는 개편은 중앙집권만 강화시킨다”거나 “16개 시·도에도 나눠주지 못한 권력을 70개 광역시에는 나줘 줄 수 있느냐”며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 발전연구원장·교수·전문가 등 15명이 3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음은 주제발표 요지.

제주도를 제외한 현행 230개 시·군·구를 70여 개 통합광역시로 개편한다. 평균인구는 70만 명 전후로 예상한다. 실제 몇 개가 될지는 통합해 봐야 알 수 있다. 통폐합으로 없어지는 시·군 지역에는 자치단체가 아닌 행정구를 둬 주민불편을 해소한다. 통합광역시가 발족한 후 시·군의 3분의 2가 독립하면 도청은 폐지한다. 따라서 지방행정이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어든다.

국토관리청 등의 지방사무도 대부분 광역시로 이관한다. 통합광역시는 주민 생활과 관련된 대부분 업무를 지역 내에서 처리하며 자치입법권·경찰권 등을 행사한다. 특별·광역시는 신중한 검토 후 통폐합 여부를 결정한다. 또 전국을 5~7개의 광역권으로 나눠 지방광역행정청을 설치하고 지방경쟁력·국가경쟁력을 여기서 담보하도록 한다.  

읍·면·동을 자치단체로 둬서 풀뿌리 자치를 실현한다. 하수구 고치는 일, 환경보호 등 기능을 맡기는 것이다. 예산은 통합광역시에서 인구비례를 따져서 교부금 형태로 나눠 준다. 이 같은 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정부는 통합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통합 여부는 전적으로 주민에 맡겨야 한다. 행정체제 개편 실시 여부도 국민투표를 거쳐서 정당성을 확보한 뒤에 시행한다.



전문가 15인 브레인 토론

▶사회(김정수)=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방분권·국가경쟁력 등과 관련해 앞으로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권용우=‘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국민공감대를 얻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230개 시·군·구를 70개 통합광역시로 개편한다는 내용이 논의의 핵심이다. 원칙과 명분을 확실히 해둬야 한다. 100년 이상 유지돼 온 행정체제를 개편할 때 국민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김용웅=지금까지 정치권에서만 논의가 이뤄져 왔다. 정치권은 현재의 행정구역 구조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 주는 선에서 역할을 끝내야 한다. 비정치적인 상설기구를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 또 지금 논의가 행정구역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보다는 중앙집권적인 현 체제를 어떻게 지방분권형으로 개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온영태=행정서비스 편의를 높이고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게 목적이 돼야 한다. 현 체계로는 각 지자체가 대외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 그래서 인근 시·군·구끼리 묶어 자원 배분의 효율을 높이려는 것 같은데 그것이 행정서비스 향상까지 담보하지는 못 한다.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고심해야 한다.

▶김정호=주민 생활에 대한 논의가 없다. 교육·교통 서비스는 광역단위에서, 치안 문제 등은 소규모 단위에서 계획돼야 효율성이 높아지는데 이 같은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가 없다.

광역 단위 재편이 효율적인가

 ▶황희연=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현재 군 단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국제 마케팅을 펼쳐 예산을 마련할 만큼 도나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도는 여전히 군을 관리하려 드니 마찰이 생긴다.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한 때가 왔다는 얘기다.

▶허태열=교통·정보통신망이 발달된 요즘 일부러 지역 간에 일일이 선을 그을 필요는 없다. 중앙정부가 광역행정청에 예산은 주되 그 세세한 용도는 지방의회 형식의 의결기관에서 결정하도록 하면 주민참여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다.

▶육동일=장기적으로 분권과 자치는 꼭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광역권 구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당장의 효율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고서대로 체제 개편이 이뤄지면 현재 느린 속도로나마 진행 중인 권력의 지방이양이나 자치경찰제 등이 전면 중단될 것이다. 또 행정중심복합도시 등의 사업 역시 원점에서 검토돼야 할지 모른다.

▶허태열=요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볼 때 현재 16개 광역 지자체에 더 이상의 권한을 주면 대통령의 통치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 광역권 구획은 오히려 지방자치를 내실화할 것이다. 통합된 시·군·구에 자치입법권까지 주면 된다.

▶정희윤=현 제도 아래서 광역행정청을 한시적으로 운영해 지방에 대한 국가사무를 분리시키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나중에는 그 사무를 통합 광역시에 옮겨 줘야 한다. 이처럼 구역을 가른다는 식의 접근보다 실질적인 사무 이양과정을 생각해야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민투표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70개 통합시는 적정한가

 ▶최막중=행정체제 개편에는 공감하지만 70곳으로 통합하는 것은 문제다. 세계사 흐름에서 국가 간 경쟁이 지역 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이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지역을 70곳으로 쪼개면 소규모 지자체에서 경쟁력이 나올지 의문이다. 이는 통일이 되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또 수많은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매달리면 정부 효율도 떨어진다. 20곳 정도로 재편하는 게 적합하다.

▶진영환=70개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국토연구원이 통근·통학 등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니 28개로 재편하는 게 적합하다고 나온다. 특히 수도권은 하나의 자치단체가 된다. 이 분석대로 재편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이에 준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허재완=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70만 명 이상의 도시가 되게끔 통폐합하라는 가이드라인만 있으면 된다. 그 다음에는 자율적으로 각 시·군·구가 효율적인 통합 방법을 택할 것이다. 다만 도시 브랜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특별·광역시는 현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허향진=지방행정체제 개편은 확실한 분권이 뒤따라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제주도는 2005년 이후 시·군 기초단체를 폐지하고 단일화된 자치단체로 개편했다. 이에 따라 도시의 경쟁력과 주민편의가 나아졌는가에 대해 “예”라고 답하기 힘들다. 중앙부처가 이기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말로만 특별자치도를 만든 상황에서 기대 효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기덕=분권에 대한 논의 없이 개편만 한다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지자체로 권한을 이양하면 지방 경쟁력이 높아지고 주민불편도 해소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중앙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야합 등이 70개 자치단체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방책을 논의해야 한다.

▶이수희=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으려고 지자체 간에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다. 자치경찰권 등의 권한을 부여하면 지방분권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는데, 그렇다면 현재 16개 광역지자체에 그 권한들을 줘도 상관없지 않겠나.

이봉석·최선욱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포럼 참석자(가나다순)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국장(사회)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
김용웅 충남발전연구원장
김정호 강원발전연구원장
신기덕 전북발전연구원장
온영태 국토연구원 건축도시공간연구소장
육동일 대전발전연구원장
이수희 충북개발연구원장
정희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광역경제권연구단장
진영환 국토연구원 도시혁신지원센터소장
최막중 서울대 교수
허재완 중앙대 교수
허태열 한나라당 국회의원
허향진 제주발전연구원장
황희연 충북대 교수 겸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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