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분 독대 … MB, 정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지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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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115분 동안 진행된 오찬 회동에서 여야가 경제 살리기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단독 회동한 것은 5월 20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 만난 이후 4개월여 만이며 정 대표와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종택 기자]


“Too good to be true.”(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25일 이명박 대통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오찬 회동이 끝난 뒤 회담 결과에 대한 총평을 이렇게 표현했다. 청와대는 이번 회동이 과거 ‘김대중 vs. 이회창’, ‘노무현 vs. 박근혜’의 전례처럼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얼굴 붉히면서 언쟁만 벌여 결국 안 만났던 것보다 못한 상황으로 꼬이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

가뜩이나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전운이 무르익고 있는 마당에 양측의 최고실력자가 직접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지면 여권이 쟁점법안을 처리하는 데 훨씬 더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날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7개 항의 합의를 도출하면서 외형상 매끄럽게 회담을 매듭지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정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부르면서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만나기로 한 것이나 주요 국정 현안을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관계 기관장이 정 대표에게 사전 브리핑하도록 한 것은 대통령의 ‘대야 소통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번 회동이 향후 국회에서 여야 상생 무드를 조성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정 대표도 판을 깨지 않고 가급적 많은 합의를 이끌어 내는 쪽으로 목표를 잡은 것은 ‘야권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어서다. 정동영·손학규의 뒤를 잇는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려 하는 정 대표에게 대통령과의 회동은 ‘이명박 맞상대=정세균’이란 인식을 국민들에게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처음부터 공격일변도로 나가 청와대가 추후 회동을 단념케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대여 항전’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섣부르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남북협력, 중소기업 살리기 등에선 의미 있는 대화 결과가 나왔지만 전반적인 국정운영이나 경제정책 기조는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구체적 대화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정 대표는 종부세, 공안정국, 언론장악, 종교편향 등 껄끄러운 이슈들을 이 대통령 면전에서 전부 제기했다. 이 대통령도 그런 대목에선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아 팽팽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야 대치의 주전선을 너무 건드리면 회담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두 사람은 민생·경제 분야의 ‘부담 없는 주제’로 합의내용을 채웠다고 봐야 한다. 결국 양측의 필요성에 의해 일부 ‘각론’은 합의했지만 ‘총론’에선 큰 진전은 없는 결과다.

향후 정기국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민생 분야에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어렵지 않게 합의안을 만들 수 있겠지만 언론관계법, 세제 개편, 검찰 사정, 재벌규제완화 등의 민감한 핵심 이슈는 정면 충돌을 피하기 힘든 구조다. 다만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첫 번째 만남에서 대화의 물꼬를 순조롭게 튼 만큼 여야의 대치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두 사람이 직접 담판을 짓는 해법을 열어놨다는 점은 이번 회동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정하·임장혁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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