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다쳤다고 야구선수 내보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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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투자은행(IB)의 시대는 끝났나’.

미국 5대 IB가 파산하거나 상업은행과 손잡기로 하자 IB 회의론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그러나 회의론의 근거 중 상당수가 IB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증권연구원 김형태(사진) 원장은 25일 ‘IB에 대한 일곱 가지 오해와 진실’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를 반박했다.

◆오해① IB 사업 모델은 실패했다

IB는 위험을 다루는 전문가다. 시장에 위험이 존재하고, 이를 분산·회피하려는 수요가 있는 한 IB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IB가 망한 이유는 과도하게 빚을 끌어다 투자했기 때문이다. 파산한 리먼브러더스나 베어스턴스는 자기자본의 40~50배에 달하는 빚을 끌어다 투자했다. 한국 증권사의 부채는 자기자본의 3~4배밖에 안 된다.

◆오해② IB 기능은 상업은행(CB)이 하면 된다

상업은행은 예금을 기반으로 기업·가계에 대출해 주는 방식으로 경제에 돈을 공급한다. 이와 달리 IB는 주식·채권 거래를 중개해 자본시장에 돈이 돌게 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 간 인수합병(M&A)도 주선한다. 여기엔 위험이 따르는데 이를 평가해 값을 매기고, 분산하는 일도 IB가 한다. 상업은행과 IB는 전공분야가 다르다. 축구선수가 다쳤다고 야구선수를 대신 내보낼 수는 없다. 후보라도 축구선수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오해③ 은행지주회사 허가를 받은 골드먼삭스·모건스탠리도 은행이 된 게 아닌가

미국은 한국과 달리 금융지주회사법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골드먼삭스는 먼저 은행지주회사가 된 뒤에 IB 중심의 금융지주회사로 변신할 계획이다. 지주회사 아래에 예금과 대출을 하는 상업은행을 자회사로 거느리게 될 뿐 지주사 전체가 은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지주회사가 된 뒤에도 IB 중심의 사업구조는 유지될 것이다.

◆오해④ IB가 활용한 파생상품이 금융위기의 주범이다

은행 입장에선 예컨대 100억원짜리 대출을 해준 다음 이를 10억원짜리 채권 10장으로 쪼개 팔아 돈을 회수하면 장기간 돈이 묶이지 않아 좋다. 이 돈을 다시 대출에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를 증권화라고 하는데, 이는 자본시장에서 돈이 잘 돌게 하는 효과가 있다. 증권화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증권화를 너무 많이 써먹은 것이다. 미국 IB들은 대출 후 자금 회수 과정을 4~5차례나 반복해 대출을 뻥튀기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이를 두 번까지밖에 못 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오해⑤ 미국 유수 IB가 실패했으니 한국도 IB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국내 은행은 중소기업에 대출을 꺼린다. 위험을 관리할 능력이 모자라서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위험관리 전문가인 IB가 더 필요하다. 다만 미국과 같은 글로벌 IB를 지향하는 것은 국내 금융회사 현실에 맞지 않다. 중소기업에 특화한 미국 제프리스 같은 IB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오해⑥ 미국이 IB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으니 우리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

미국은 규제를 너무 풀어서 문제가 생긴 반면 한국은 규제가 너무 많아서 금융산업이 크지 못하고 있다. 중년 아버지가 콜레스테롤이 쌓였다고 성장판이 막 열린 어린아이에게도 고기를 안 먹이고 콜레스테롤 약을 먹여서 되겠나.

◆오해⑦ IB는 위험하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IB의 생명은 창의력이다. 이를 규제하면 IB는 죽는다. 미국 금융위기의 교훈도 IB를 고사시키라는 게 아니다. IB가 마음껏 활동하게 하되 건전성 감독을 잘하라는 거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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