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작품’ 종부세, 집안단속도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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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격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는 것은 누구의 작품이었을까. 왜 여권은 자중지란을 보이고 있을까.

종부세 감면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 대선 공약이었고, 1월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여권이 가다듬어온 정책이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1월 14일 “종부세 개편은 부동산 경기를 파악해 가면서 올 하반기에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뒤 9개월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내부 설득조차 못한 셈이다. 종부세 혼선은 당정의 합작품이다.

지난달 28일 최경환 한나라당 수석정조위원장은 당 워크숍에서 의원들에게 “종부세 부과 기준 6억원을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문제를 당정 간에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종구 의원 등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제출해 놓은 종부세 개정안과 같은 맥락이기도 했다. 더욱이 이는 종부세가 처음 도입됐던 2005년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여권 내에 거부감이 적었다.

그러나 이달 초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말께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종부세 위헌심판 결정이 변수로 떠올랐다. 만일 헌재가 세대별 합산 과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 인별 과세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금은 부부가 각각 5억9000만원짜리 집을 갖고 있으면 11억8000만원으로 종부세 대상이지만, 인별 과세로 바뀌면 종부세를 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별 과세로 가면 부과 기준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한 사람은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임 의장은 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부과 기준을 9억원으로 올리는 것은 근본 대책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장기 주택 보유자에게 종부세를 감면해주는 조치에 무게를 뒀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부세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지목해온 대상도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였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2일 오후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이 기자실로 뛰어내려왔다. 그는 “종부세 부과 기준을 9억원으로 올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이어 강 장관 팀은 ‘6억원→9억원’ 카드를 제외한 채 장기 보유자에게 종부세를 최대 80% 감면해주는 안과 세율 인하로 구성된 종부세 개편안을 들고 한나라당 정책라인과 마주 앉았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장기 보유 특별공제가 도입되면 같은 아파트 주민들끼리도 보유기간에 따라 종부세가 차이 나기 때문이다. 지역구의 표를 의식하는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기껏 세금을 깎아주고도 지역구에서 원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보유세를 보유기간에 따라 깎아주는 것이 세제 원리에 맞지 않다는 점을 내심 꺼림칙해하던 차였다. 협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는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소집해 전문가 의견을 취합했으나 묘수를 찾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장기 보유 특별공제 카드를 접는 대신 폐기했던 ‘6억원→9억원’카드를 다시 꺼냈다. 당정은 18~20일 다시 머리를 맞댔고, 부과 기준을 9억원으로 올리고 세율을 낮추는 내용의 종부세 개편안에 최종 합의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추경안 처리 무산으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사의를 나타낸 상태여서 한나라당 지도부에 개편안을 설명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 이로 인해 종부세 개편안은 지역구 사정이 제각각인 여당 내에서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당정 합의 내용이 22일 알려지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24일에도 ‘9억원으로 올린다’ ‘6억원을 유지한다’는 상반된 목소리가 쏟아지며 혼선을 빚고 있다.

이상렬·정강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도대체 여당이 왜

재정 대책 없는 정부 불쑥 발표에 불만
“지방 분위기 안좋다” 여론 역풍도 의식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이 확산일로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연일 찬반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당 지도부도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원안대로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반대 입장을 펴는 의원들은 “왜 지금 시점에 이토록 서둘러 밀어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기획재정부를 소관하는 국회 재정위원회 서병수 위원장마저도 24일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러 군데 알아봐도 안다는 사람이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종부세 완화 목적이 뭔가”=이명박 정부가 대선 공약인 종부세 완화를 실천에 옮기는 데 이처럼 진통을 겪는 이유는 뭘까.

그 한 가지는 이날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나온 홍사덕 의원의 말에서 나왔다. 홍 의원은 “종부세 개혁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것 아닌가”라며 “그렇다면 이와 관련된 거래세나 다른 보유세들, 재산세 등을 깎아주는 등 일련의 세제 개편안이 같이 제시돼야 설득력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종부세를 완화한다면서도 정작 관련된 세제 개편안은 내놓지 않아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종부세 완화로 인해 빚어지는 지방 재정 부족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2조원에 달하는 지방 세수 결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고 물었고, 주성영 의원은 “지방은 아주 분위기가 안 좋다”고 전했다.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이 시행되면 종부세 수입은 내년에 1조1400억원 줄어들고 2010년까지는 2조2300억원이 감소한다. 종부세가 줄어들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재정이 더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종부세 완화로 인해 줄어든 세수 보전을 위해선 재산세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종부세를 내지 않던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정부에서 지방 재정에 대해선 대안을 마련하고 있고 이미 많은 세원이 노출돼 충분한 세금이 걷히고 있는 만큼 재산세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신뢰에 금 갔다”=당내에선 종부세 완화에 대한 반발이 예견된 상황에서 종부세 개편안을 밀어붙인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성식 의원은 “국민 다수가 공감하지 않는 종부세 완화를 밀어붙이면 결국 나중에 가서 정부가 진짜 밀어붙여야 할 일을 추동할 힘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의원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서민경제 어려움으로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시점에 ‘원칙’만 내세워 경제 활성화와 직접 관련이 없는 종부세 완화를 추진하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종부세 논란이 커질수록 정부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윤성 국회 부의장은 “종부세 자체의 내용보다는 사전에 충분히 논의가 되지 않아 정부의 신뢰에 금이 갔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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