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고 만났지만 더 꼬였다? 영수회담 징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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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 징크스’란 말이 있다.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대통령과 야당 대표(또는 총재)가 만나지만 오히려 더 꼬이곤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뒤끝이 안 좋다는 얘기다. 40여 년 정치 경력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성공한 게 별로 없다”고 기억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은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를 푸는 수단으로 영수회담 카드를 써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권·대권 분리 이후 처음으로 여당 총재가 아닌 대통령에 당선돼 “영수정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결국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났다. “어쨌든 효과가 있다”(박지원 민주당 의원)고 여기거나 “여야 타협을 원하는 국민적 분위기”(박관용 전 국회의장)가 있기 때문이다.

회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은 뭘까. 역대 회담을 지켜본 사람들의 조언은 이렇다.

① 솔직함은 통했다=197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은 김영삼(YS) 신민당 총재를 만났다. YS의 무수한 영수회담 제의를 뿌리쳤던 그는 정작 만나선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냈다. 창 밖의 새를 가리키면서 “처(육영수 여사)가 없으니 이 큰 집이 절간같이 느껴집니다”라더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러곤 “날 믿으시오. 민주주의를 꼭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여권)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요. 권력을 잡으리라 예상되는 사람에게 몰려 통치가 되질 않아요. 그러니 이 얘기는 우리끼리만 한 걸로 합시다”고 했다. 청와대를 들어갈 때 싸늘했던 YS는 누그러져 나왔다.

96년 4월 대통령인 YS를 만나고 나온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는 “김 대통령이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눠줘 고맙다”고 말했다. 회담 분위기가 좋았던 건 물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을 의식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②‘두 사람만의 비밀’이 때로는 활력소가 된다=박 전 대통령과의 회동 뒤 YS가 결코 하지 않은 얘기가 있다. YS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의장은 “YS는 지금도 말하지 않고 있는데 주위에서 정권 이양에 대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할 뿐”이라며 “국가 이익과 관련된 걸 논의해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비밀이 때론 야당의 ‘하소연’일 수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간첩 사건에 연루돼 야당 인사가 구속되자 DJ가 “훌륭한 젊은이”라고 선처를 부탁해 받아들여진 일도 있다. 박지원 의원은 “비공식적인 의제도 나눌 수 있는 영수회담이 되면 성공적”이라고 전했다.

③‘대화 의지’가 중요했다=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은 총론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야당은 조목조목 현안에 대해 짚고 양보를 끌어내고 싶어한다. “대화하고 합의하겠다”는 양측의 의지가 없으면 논쟁만 하다 끝날 수 있다. 실패한 영수회담 뒤 “마치 싸우러 온 듯하다”(청와대 측),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야당)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두 사람 간 인간적 불신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94년 YS-이기택 민주당 대표, 2001년 1월 DJ-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2005년 9월 노무현 대통령-박근혜 전 대표 간 회동이 그런 케이스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2000년 6월 의약분업 때문에 진료 마비 사태가 왔을 때 DJ와 이회창 총재가 ‘원 포인트’ 영수회담을 했다. 약사법 개정 여부만 논의했다. 이 총재는 당시 “사쿠라(변절자)란 소리를 듣겠다”는 당내 농담에 “민생 문제에 대해선 협조할 건 협조하는 게 상생정치”라고 반응했다.

영수회담 배석자들은 “중요한 건 대화 의지”라고 강조했다. YS-이기택 대표 회담에 대표 비서실장 자격으로 배석했던 문희상 국회 부의장은 “대통령이 경청하려는 오픈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용 전 의장은 “여당과 정부 입장에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걸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하면 회담 자체가 부담스러워진다”며 “ 현실적이고 타협 가능한 걸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④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는 여러 차례에 걸친 실무급 만남이 이뤄진다. 마치 외국 정상들 간의 회담 때처럼 철저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회동은 여야 대화의 마지노선이다. 이들마저 싸우면 정국 경색이 불가피하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사전에 의제를 조율해 충실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공격적이고 정치적 소재를 놓고 논의할 경우 서로 감정만 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통 오찬을 하는데 저녁 때 술도 한잔 곁들이면서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조언도 나왔다. 

고정애·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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