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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로봇 윤리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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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 최초의 로봇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일렉트로’다. 전원을 넣으면 어설프게나마 앞뒤로 걷고, 녹음된 77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

오늘날 로봇은 우리 주변 도처에 있다. 자동차 조립·외과 수술·우주 및 해저 탐사·군사 작전·농약 살포 등 여러 분야에서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고, 청소용 로봇이나 로봇 애완견처럼 가정용으로 대량 생산되는 로봇도 적지 않다.

2005년 일본의 아이치 박람회에서는 외형상 인간과 흡사한 로봇이 등장했다. 오사카대학의 한 교수가 개발한 ‘리플리Q1’은 미인 여성이었다. 부드러운 실리콘 피부에 속눈썹과 눈동자를 움직이고,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제한적이지만 영어·일본어·한국어를 구사했다. 현장에서 이것이 로봇이라고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인공지능)’에 나온 남창 로봇 ‘지골로 조’를 떠올리게 된다. 이상적인 외모와 뛰어난 테크닉을 갖춘 섹스로봇의 시대가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로봇연구네트워크(EURON)의 설립자 헨리크 크리스텐슨 박사는 2006년 “향후 5년 내 로봇과 성생활을 즐기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끼리의 매매춘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겠지만 인간 본성의 황폐화라는 또 다른 우려가 생긴다. 로봇이 인간과 닮을수록 그 우려는 더 크다.

지금의 기술 발달 속도라면 2030년께엔 로봇의 지능이 인간과 맞먹는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지난해 영국의 인공지능 연구가 데이비드 레비 박사는 “50년 뒤엔 인간과 로봇이 결혼도 하게 될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6년 영국 정부가 “50년 뒤 로봇이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과 궤를 같이하는 주장이다.

29일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촉진법’이 국내에서 발효된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로봇 윤리헌장’도 마련 중이다. 인간이 로봇을 학대하거나 로봇이 인간을 학대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의 윤리와 기술을 기준으로 미래의 현실을 규제하는 셈이지만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로봇과 섹스하고 결혼하는 시대를 말세라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시급한 것은 말세에 미리 대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