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증권사의 約定경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달 30일 증권거래소 국제회의장에선 국내 언론이 외면하는가운데 한 회의가 열렸다.이름하여 「한국증권산업 구조개선을 위한 공청회」였으나 실은 증권회사의 영업관행을 성토하는 자리였다. 믿거나 말거나,주최는 증권사노조협의회(증노협)와 경실련.증권사 직원들이 스스로를 공개비판했다는 말이다.증권사들이 약정경쟁에 골몰하다 보니 직원들은 「약정기계」로 전락했고,투자자들의재산증식에는 애초 관심이 없다는 것이 발제(發題) 의 요지다.
임의매매(고객의 동의없는 경우),일임매매(알아서 잘해 달라고 맡긴 경우)는 물론 지나치게 잦은 매매의 유도등 모든 문제가 증권사간의 약정경쟁에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증권사 직원들이 잘못된 관행을 반성한다면 환영할 일이다.어떤형태로든 개선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좀 심한 말인지는 모르나 차라리 사직하는 것이 「직업윤리적」이다.내가 살기 위해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증권사사장이라면 지키지 않을 「과당경쟁 자제 공동결의」를 하기보다는 직원들에게 직업윤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약정이 문제가 아니라 예탁자산이 불어나지 않는 약정이 문제기 때문이다.예탁자산을 왜,어떻게 늘려야하는가를 가르치는데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동안 증권사가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늘 당하기만 한」 증권사 직원이나 고객의 입장에서 도무지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증노협이 약정과 연계된 연봉제(年俸制) 도입을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직업윤 리는 사장과임원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다.
지점 마다 감시직원(compliance officer)을 두어 모든 거래를 일일이 체크해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즉시 경고를 주고 필요하다면 경위서를 쓰게 할 용의는 없는가.심한 경우본사 감사실에 직접 보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이렇게 해도 사고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 증권영업의 속성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무슨 돈 들어갈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그러나 주식시장이 정직해지면 언제라도 주식투자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투자자들이 무지(無知)하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지금과 같은 주식시장을 철저히 외면하 는 그들이야말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시장을 떠나지 못한사람들도 원금에 대한 미련때문에 볼모로 잡혀 있을 뿐 차이는 없다.머지않아 이들조차 「내돈을 내가」 지키기 위해 불법.변칙영업을 고발하고 윤리적인 전문가를 찾아 계좌를 옮길 것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