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죽기 전에 어머니 한 번만 봤으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다섯 살 때인 1957년 미국으로 입양됐던 산드라 레더우드(한국 이름 김정애)가 어머니와 찍은 유일한 흑백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레더우드는 말기 암 투병 중 치료를 중단한 상태며 생모를 찾기 위해 16일 한국을 방문했다. 아래 사진은 입양 후 미국 가정에서 찍은 것이다. [양영석 인턴기자]

 가는 팔 사이로 파란 정맥이 비쳤다. 3년 동안 체중이 54㎏에서 43㎏으로 줄었다. 10년 동안 항암제를 복용해 왔다. 산드라 레더우드(56·미국). 한국 이름으로는 김정애다. 김씨의 생명선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지난 16일 한국을 찾았다. 51년 전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김씨가 가진 단서는 낡은 흑백 사진 하나와 은 숟가락과 젓가락 한 벌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한복을 입은 채 금발머리의 김씨 손을 잡고 있다. 낡은 기와집이 배경이다.

김씨는 어머니 김정자(金貞子)씨의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그녀는 “어머니가 여든이 넘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살아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며 가는 숨소리를 섞어 가며 말했다. ‘어머니’라는 한국말만 들어도 눈물을 훔치는 김씨지만 사진 속 모습처럼 어머니가 환하게 웃어 줄 날을 기대하고 있다.

태어난 곳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의 부산. 김씨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아버지 이름조차 알 수 없다.

네 살배기 김씨는 어머니와 헤어진 뒤 부산 애생직업보도소로 추정되는 곳에 맡겨졌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그는 당시 월드비전이 운영하던 서울의 한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졌다. 한국말이 서툴지만 보호시설에서 배웠던 찬송가는 한글 발음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김씨는 57년 1월 다섯 살의 나이에 태평양 건너 텍사스에 살고 있던 미국인 애덤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72년 5월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가 된 김씨는 자신의 뿌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90년 어머니의 주소지였던 부산시 반여동 1486번지로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편지는 반송됐다. 수취인 불명이 이유였다.

97년 텍사스 보훈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김씨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지만 2000년 다시 유방암이 재발했다. 항암 치료를 받던 중인 2004년 남편도 암으로 떠나 보냈다. 계속된 항암 치료로 기억이 희미해져 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커져 갔다. 서랍에 넣어 둔 반송된 편지와 양부모가 건네준 사진과 입양 당시 발행된 여권이 눈에 밟혔다. 의사는 항암 치료를 이어 가던 김씨에게 올 7월 1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 암세포는 뼛속을 파고들었다.

“퍼진 암 세포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순 없지만 어머니를 가슴속으로만 부르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한국을 찾았지만 어머니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고향인 부산에 있던 집터는 공장으로 변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딸이에요”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김씨는 30일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김씨는 “양어머니를 이미 잃었어요. 어머니 2명을 모두 잃고 싶지는 않아요”라며 빛바랜 사진과 여권을 가슴에 꼭 안았다. 김씨의 혈육 찾기는 23일 오전 11시 KBS 프로그램 ‘그 사람이 보고 싶다’에서 방송된다.

강기헌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J-HOT]

▶족보에도 없던 경기도 조폭들이 '활개'

▶YS "박정희와 회담뒤 지금까지 말 안한게 있어"

▶이라크 대통령, 최규선 감싸자 검찰 '뜨아'

▶盧 "유종필씨 밉다"… 민주당선 "……"

▶부자감세 비판에 강만수 "고소득층 대못 박는건 괜찮나"

▶"주민과 모닝커피" "체니보다 위험" 두얼굴의 페일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