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如是我讀 나는이렇게 읽었다] 메이 데이의 핏빛 역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대인들은 5월 첫날 플로랄리아(Floralia) 축제를 열었다. 봄과 꽃의 여신 플로라를 기리는 이 축전은 단연 장미와 장밋빛 잔치였으리라. 기원전 253년 로마에서 비롯된 이 축제일에 즈음해서 현대인은 메이 데이(May Day) 행사를 치른다. 그러나 5월의 잔치답지 않게 메이 데이에는 피와 핏빛 얼룩이 가득하다. 역사학연구소가 집필한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서해문집, 2004)는 이런 얘기로 시작된다.

한쪽에는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 말아 피우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7~8달러의 주급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개들의 세계는 절대로 그렇지 않으렷다. 이런 세상은 바뀌어야 하기에 미국노동총연맹(AFL)은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1886년 5월 1일 총파업을 단행했다. 시카고 시위에서는 3일 파업자에 대한 경찰 발포로 4명이 죽었다.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 폭탄이 터져 경관 7명이 숨지고, 대응 사격으로 20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노조 지도자 8명을 범인으로 기소한 당국은 이듬해 처형 4명, 종신형 2명, 옥중 자살 1명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그것은 재판이 아니라 재판을 빌린 살인이었다. 피고인들의 성향이 무정부주의자라는 것뿐 어떤 유죄 증거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후 진술에서 그들 중의 하나는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 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27쪽)고 외쳤다. 그는 또 “우리의 침묵이 오늘 우리의 목을 매다는 당신들의 사형 명령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28쪽)라는 말을 남기고 교수대에 올랐다. 오죽했으면 런던에서 버나드 쇼가 “세상이 8명의 인민을 잃느니 일리노이 주 대법원의 법관 8명을 잃는 편이 낫다”고 직격탄을 날렸을까. 뒷날 재조사로 주지사는 그들의 혐의를 벗겨주었으나 6년 전에 가져간 목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1890년 5월 1일을 기해 ‘만국 노동자의 시위’를 선언했다. 메이 데이의 효시였다. 정작 유혈로 메이 데이를 연출한 미국은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의 날’로 정해 딴판을 벌이고 있다.

메이 데이는 박래품(舶來品)이지만 반갑게도 이 책은 ‘메이 데이의 한국사’를 들려준다. 식민지 조선 노동자의 메이 데이 행사는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의 장이었다. 일제는 메이 데이 탄압에 혈안이 되었으며, 1924년 5월 2일 조선일보는 “시가에는 기마 순사의 말 자취 소리가 요란하고 사상 단체의 사무소 앞에는 사복 형사가 지켜 서서 무엇인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무산자는 소리 없이 압박에 묻혀 있고 그 대신에 경관대가 메이 데이를 축하하는 듯하더라”(57쪽)라고 썼다.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던 1938년 메이 데이도 ‘근로일’로 창씨 개명을 한다.

해방 공간에서 노동 운동을 주도한 것은 좌익계 전평(全評)이었다. 군정은 진보적 민주주의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등 ‘정치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1947년 전평을 불법화했다. 대한노총이 이승만 정권의 충복이 되었는데, 일례로 1956년 메이 데이 개회식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은인인 이승만 박사를 절대 지지하자”(123쪽)고 용비어천가를 읊조릴 정도였다. 메이 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대한노총은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군사 정권의 시녀를 자임한 한국노총은 박정희의 유신 정변이 “구국 통일을 위한 영단”이고, 전두환의 독재 연장 기도마저 위기 해소를 위한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데는 전태일의 분신과 김경숙의 죽음에서 6월 대항쟁까지 엄청난 투쟁과 희생이 따랐다. 드디어 1989년 재야의 민주 노동 세력은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함과 아울러 메이 데이를 우리의 진정한 노동절로 엄숙히 선포한다”(208쪽). 그리고 1990년 메이 데이 기념 100년 만에 민주노총의 누룩 전노협이 결성된다.

이 책은 치열한 시대에 대한 치열한 보고서이다. 그래서 오늘의 눈으로 읽자면 다소 튀는 부분도 없지 않다. 1904년 4월 레닌은 “낡은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자유로운 러시아가…다가오고 있다”(178쪽)고 치열한 레토릭의 메이 데이 기념사를 썼다. 2004년 4월 그 자유로운 러시아는 어디 있는가? 그것도 역사의 간지(奸智)라면 해방 공간에서의 함성대로‘노동자 환희의 날 메-데-’가 자본가의 대액일(大厄日)일 필요는 없으리라. 장미는 핏빛도 아름다우니!

정운영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