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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불황에도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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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내수 부진을 외수 확대로 타개=세계 최대 건설기계 업체인 미국 캐터필러가 올 들어 선진국의 많은 기업을 놀라게 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상태를 판단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로 알려진 이 회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매출액을 52% 늘려 매출액·순이익 모두 분기별로 과거 최대 기록을 내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 500억 달러 달성의 성패를 중국·인도·러시아 등 신흥공업국에 걸고 있다.

특히 중국 매출만 올해 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에는 향후 3년간 10억 달러를 연구개발센터 개설과 공장 확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캐터필러사는 세계적인 1차상품 붐을 내다보고 일찍부터 원유·가스 및 광물자원 산업에 필요한 시추·시굴 중장비와 발전장비 시장을 개척해 왔다. 아시아에선 2010년까지 공급할 물량을 모두 확보해 놓은 상태다.

한편 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제프 이멜트 회장은 지난달 18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회사의 내년도 대중국 매상고가 올해의 두 배인 100억 달러(약 11조원) 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GE 중국 사업의 지난해 매출은 44억 달러, 올해는 50억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공업용수 재이용, 해수 담수화 등의 수처리 사업, 에너지사업 확대 등 올림픽 이후의 새로운 특수를 챙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들이 앞으로 미국 경제 연착륙을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신호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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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거스르는 ‘마이 웨이’=일본 게임업체 닌텐도는 최근 내년 3월 결산 때의 매출액(연결결산) 목표를 당초 예상보다 11.1% 늘어난 2조 엔(약 20조원)으로 잡았다.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22.6% 늘려 잡아 과거 최고 기록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에서 ‘닌텐도 DS’ 와 ‘위(Wii)’가 잘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웨어인 이들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빨리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고령자 시장을 겨냥한 것이 주효했다.

자신의 하드웨어를 갖고 있지도 않고, 제조 공장도 없으며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첨단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도 성공하는 비결은 ‘재미있는 로테크’로 특화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다. 세계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을 가는 ‘교토 문화’에서 뿌리를 찾는 분석도 있다. 닌텐도는 1889년 교토에서 화투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애물단지를 효자 사업으로=2002년 일본 히타치가 IBM에서 인수한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 사업은 일본 기업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실패로 꼽혔었다. 그게 요즘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3년 전 히타치 본사의 사장감으로 여겨지던 나카시니 히로아키를 미 새너제이에 본거를 둔 HDD 사업 자회사의 최고경영책임자(CEO)에 임명해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한 것이다. 그는 최근 1년 새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관리책임자(CAO),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3C’에 IBM 때부터 있었던 인사들을 모두 갈아치우고 외부 인사를 앉혔다.

그는 우선 이들에게 먼저 비용절감을 강조하며 공장 집약 등 적자 체질을 벗어나는 데 박차를 가했다. HDD 사업은 우수한 기술자가 모여 있고, 재무가 탄탄한 가운데서도 계속 적자를 내왔다. 지금은 히타치의 IBM 성공신화 지우기가 한창이다.

◆선택과 집중에 중동 오일머니 활용=‘버릴 사업은 좋은 가격에 팔고, 새로 할 사업은 돈줄을 잘 잡고’. 선택과 집중을 하려는 기업들에 지상과제다. 미 GE가 하나의 모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플라스틱 사업부문을 160억 달러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기초산업공사(SABIC)에 팔았다. 플라스틱 사업은 GE에 있어 모태적 존재였지만 원유 가격 폭등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GE는 이를 석유산업의 상류에 해당하는 범용 기초소재 공급자로서 급성장하고 있는 SABIC에 판 것이다. SABIC는 하류에 해당하는 플라스틱을 갖춤으로써 석유산업에서 일관생산이 가능해졌고 GE는 골칫거리를 해소했으니 윈-윈 게임이 된 셈이다. GE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여름 아랍에미리트(UAE)의 정부펀드인 아부다비의 무바다라개발과 손잡았다. 양사는 공동으로 40억 달러씩 출자한 금융회사 , 대체에너지와 물 관련 기술개발센터, 항공기 엔진 정비·수리 거점을 아부다비에 설립하기로 했다. 동시에 무바다라는 GE 주식을 대량 사들여 주식 보유 비율로 10위 이내의 대주주가 되기로 약속했다.

GE는 아부다비의 자금을 활용해 중동 시장에 큰 거점을 확보하면서 주가를 받쳐줄 장기투자자를 확보하게 됐고, 아부다비는 두바이에 맞서는 산업기반을 갖추게 돼 또 다른 윈-윈 게임을 연출했다. 한편 독일 지멘스도 중동의 정부펀드와 협의 중이고, 일본 시세이도(화장품), 이토엔(식음료) 등도 중동 IR에 나서는 등 중동 투자가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세계적인 주가 하락 때 M&A=금융시장의 혼란이 M&A 시장을 급랭시키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은 반대로 해외 기업 매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T)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적인 재무 체질개선과 넉넉해진 자금, 주가 하락으로 상대적으로 낮아진 매수금액이 그 배경이다. 다케다약품공업과 에자이, 다이이치산교, 기린홀딩 등 내수사업으로 자금력이 생긴 의약품, 식품업계의 우량기업들은 물론 TDK, 리코 등 전자·정밀 기기업계의 대내외 M&A가 활발하다. 매수액의 대형화도 나타나고 있다. TDK의 경우 HDD 헤드에서 세계 셰어 1위, 적층 세라믹콘덴서에서 세계 최대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말 유럽 전자부품 최대 업체인 독일 에프코스를 약 2000억 엔(약 2조원)에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부품업계의 매수 케이스로는 최대 규모로 세계적인 전자부품 업계의 재편을 예고한다.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회사 샌디스크 인수 제의도 세계 반도체 업계에선 눈을 뗄 수 없는 사안이다.

곽재원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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