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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고향사람들 이 藥으로 고쳐주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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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무에 자랑할 게 있다고 그러나. 불쌍한 고향 사람 좀 도와주려는 것뿐인데."

지난달 29일 오전 중국 단둥(丹東)항구 여객터미널에 내린 장증녀(張曾女.72)할머니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전날 오후 6시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해 15시간의 긴 여정 끝에 단둥에 도착했다.

張할머니는 5년째 인천과 단둥을 오가며 장사하는 '다이궁'(代公.보따리상)이다. 한국에서 의류.냄비.담배.술 등을 구해 단둥의 거래처에 넘기고 귀국하는 길에 한약재와 참깨 등 농산물을 들여온다.

그러나 이날 할머니의 짐은 평소와 달랐다. 라면박스 2개 크기의 상자 8개에는 탈지면.해열제 등으로 가득 찼다. 북한 용천 폭발사고의 이재민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신원을 밝힐 수 없는 독지가의 부탁을 받아 대신 가져가는 것이다.

張할머니는 3년 전부터 이 독지가가 북한 주민에게 보내는 생필품을 단둥까지 갖다 주는 '배달부' 역할을 해왔다. 부탁받은 물건이 많으면 자신의 물건 보따리를 그만큼 가져가지 못해 손해지만 할머니는 아무런 수고비도 받지 않는다.

할머니는 이날 배에서 물건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단둥 시내로 들어가 북한과 거래하는 현지 무역상에게 물건을 건넸다. 그러곤 "빨리 북한으로 반입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무역상을 재촉했다.

할머니가 노력봉사를 마다 않는 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1932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신의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할머니는 "부모님 손을 잡고 용천에 놀러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한 할머니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남편(79)과 결혼해 서울 신길동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2남2녀가 모두 장성해 품을 떠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갔다. 금강산과 단둥 여행을 다녀온 뒤 99년부터 다이궁 생활을 시작했다. 고향 땅을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해에는 단둥 시내에 아예 셋방을 하나 얻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단둥으로 가는 배에서 하룻밤, 오는 배에서 하룻밤을 자며 일주일에 세 차례 인천과 단둥을 오가는 강행군을 하고 있다.

단둥=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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