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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1만리>50.끝.제2부 기업소설 "子夜"무대 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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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해가 막 지평선 아래로 지고 있다.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사람들의 얼굴에 스친다.소주강(蘇州江)은 석양을 받아 황금빛과 초록빛을 띠고 고요히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천국과 같은 5월의 저녁 1930년 최신형 시트로앵 승용차 세대가 쏜살같이 외백(外白)철교를 지나 서쪽으로 구부러져 북소주로(北蘇州路)를 향해 달린다.』 이렇게 시작되는 모순(茅盾.1896~1981)의 장편 기업소설 『자야(子夜)』는 1930년 상해(上海)를 무대로 펼쳐진다.당시 상해는 인구 3백만명을 넘는 동양 최대의국제도시였다.서울 인구가 당시 40만명이었다니 상해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상해는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소주강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시 동쪽 황포공원의 상해인민영웅기념탑 아래서 황포강(黃浦江)과 합류해 양자강(揚子江)으로 들어가서는 곧이어 태평양에 이른다.이곳은 청나라 때는 송강부(松江府)에 속하는 작은 포구였다가 1841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체결한 남경조약에 의해 중국 최초의 개항지가 됐고,또 최초로 외국의 조계(租界)가 설치되면서 국제적인 무역항구가 됐다.
소설 『자야』는 1930년 5월부터 7월까지 2개월 동안 있었던 상해 기업계의 파란을 묘사한 중국 최초의 기업소설이다.1929년에 있었던 세계경제공황의 거센 파도가 중국에 밀어닥치면서 중국의 민족자본가들이 외국자본에 의해 몰락하기 시작한다.제사공장을 경영하는 민족자본가 오송보사장은 국제시장에서 견사가격이 폭락하면서 공장이 도산 위기에 처하자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고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하는등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기 업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에 강력히 반항하고 임금투쟁에 돌입하면서 끝내는 정치투쟁으로 전환되고 이어 민중투쟁으로 확산되면서 중국기업계는 빈사상태에 빠진다.한편 중국정부는 군벌들과의 전쟁에 필요한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공채를 마구 발행 해 증권가를 혼란에 빠지게 했다.
***오 사장은 증권가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찾으려 한다.그러나 당시 상해의 증권가는 매판자본가들에 의해 좌우됐다.심지어 국민정부군과 군벌간에 전개된 남북전쟁마저 매판자본가의 농간에 의해 전선에서 진격과 후퇴가 조작돼 증권가격의 등락을 결정할 정도였다.종당에 민족자본가 오사장은 파산하고 만다.
모순은 소설 『자야』에서 이같은 자본가와 노동자들간의 투쟁,증권가에서 일어나는 매판자본가들의 음모와 추잡한 이권다툼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소설 『자야』의 첫 시작은 시골에서 농민폭동이 일어나 오사장의 고향이 위기에 처하자 그의 부친이 상해에 오는 것을 맞으러가족들이 소주강의 부두로 나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당시 중국은세계경제공황 여파로 농촌경제가 파탄에 이르렀고 ,또 남북전쟁으로 농촌이 초토화해 농민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자 급기야 각처에서 농민폭동이 일어나고 있었다.구세대 인물인 오사장의 부친은농민들의 폭동에 견디지 못해 아들을 찾아 상해라는 대도시에 오게 된다.
***현 대문명의 상징인 도시의 가로를 질주하는 괴물같은 자동차의 무리,현란한 네온사인과 인파,여인들의 짙은 화장품 냄새에 순박한 시골노인은 도시 공포증을 못이겨 도착한지 얼마후 뇌일혈로 죽고 만다.이것은 구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노인의 장 례식에 참석하는 인사들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각계인물들이 소개되고 이들을 추적하며 소설은 전개된다.제사공장 사장 오송보를 중심축으로 기업가와 매판자본가,투기꾼간의 암투,오씨집안 가족들과 친인척간의 갈등,기업가를 따라다니며 기식하는 군상들의 행위등이 복잡하게 소설 내용을 이룬다.
이 소설은 중국근대화의 상징인 상해라는 국제도시에서 중국 전통기업경제가 서양자본주의 경제에 의해 파괴돼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 『자야』가 1933년 4월초 발표되자 중국문단은 크게 놀랐다고 한다.종래 정치나 교육계를 파헤친 소설은 있었지만 기업계를 해부한 소설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소설가중에서 기업계 내막을 이렇게 소상히 아는 작가가 없었기 때문 이었다.어떤비평가는 이 소설을 가리켜 「중국신문학기 최대의 수확」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자야』란 한밤중이란 뜻이다.이것은 1930년이 중국 경제계가 가장 어려운 시기임을 암시하는 뜻으로 여겨진다.1957년 영어번역이 나올 때 작자는 「Midnight」라고 했다가 후에『The Twilight:A Romance of China in 1930』으로 고쳤다.이렇게 고친 이유가 무엇인지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중공정부 수립이후 몇차례 수정본이 나왔던 것으로 보아 「암흑」 다음에 「광명」이 온다는 것을 제시하려 했던 것같다.
상해의 외탄(外灘)에는 지금도 30년대를 상징하는,외국인들이건축한 대형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외탄에서 황포강 건너포동에는 외자를 유치해 새로 건설한다는 고층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우리를 안내한 공업기사인 현지 가이드는 자랑스럽게 설명한다.『지금 우리 정부는 외국 자본을 최대한으로 유치해 상해를 세계 굴지의 국제무역도시로 건설하고 있어요.2002년이면 싱가포르를 능가하는 동양 최대의 무역도시가 될 것입니다.』 개방화 정책 이후 지금 상해는 크게 변모하고 있다.마치 1930년대 동양 최대 국제무역항의 꿈을 다시 실현코자 하는 듯하다.이미 지하철이 일부나마 건설됐고 도시를 관통하는 도심순환 고가도로가 건설돼 도시교통을 원활하게 하고있다.
옛날의 낡은 건물은 모두 헐리고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도시의 요지마다 솟아있는 호텔들은 우리 눈에 익은 셰라톤이니 힐튼이니 하는 서양호텔 이름이 붙어있고,번화가에는 서양담배광고와 일본산 위스키 선전간판이 10 간격으로 늘 어서 있으며「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맥도널드 햄버거」 상점도 곳곳에 보인다. 지금 상해는 거대한 공룡을 잡아먹고 있는 셈이다.과거에 그렇게도 미워하고 두려워했던 미국 제국주의 자본도,일본제국주의자본도 가릴 것 없이 마구 삼키고 있다.이제 모택동(毛澤東)시대의 사회주의 유물은 모두 파괴되고 자본주의 경제사 회를 건설하고 있다.『자야』의 주인공 오송보사장이 오늘의 상해를 본다면어떤 감회에 젖을까.황포강의 황토물결은 역사의 영욕을 품은 채오늘도 고요히 양자강으로 흘러들고 있다.뒷물결이 앞물결을 밀고가는 양자강 역시 황토빛을 머금은 채 새로운 천년을 내다보며 태평양으로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글 김시준 서울대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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