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著者와함께>대하소설 "野丁"5권 펴낸 김주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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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헐렁한 옷차림에 허름한 구두이면서도 작가 김주영(金周榮.57.사진)씨는 구두닦이를 보면 항상 구두를 닦는다.이달초 기자와페루의 잉카 유적지를 여행할 때도 인디오 「슈샤인 보이」만 보면 구두를 내밀었다.격식에 거리낄 것 없는 「순 수 자연인」 金씨이기에 구두를 광내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전후(戰後)자신의슈샤인 보이 시절,그 신산했던 기억을 다시 불러모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문학평론가 김화영(金華榮)씨는 金씨의 소설에서 신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은 그의 떠돌이 의식과 깊은 관계가있다고 밝힌바 있다.경북청송의 장터에서 태어난 金씨는 떠돌이 장꾼들의 삶을 보고 자라며 자신도 떠돌이를 택했다.한말(韓末)보부상의 삶과 풍속사를 재현한 『객주』를 비롯해 『활빈도』『화척』등 대하소설들은 바로 떠돌이 의식과 삶이 일궈낸 한국문학의한 성과로 볼 수 있다.
金씨가 다시 이달말 대하소설 『야정(野丁)』을 전5권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놓는다.金씨는 또 25일 이산 김광섭의 문학적업적을 기려 제정된 제8회 이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소설 업(業)25년을 중간결산하고 있다.『편집광적인 세 심한 고증 및현지조사 작업과 잊혀졌던 우리의 말을 창조적으로 살려냄으로써 방대하고 선이 굵은 이야기를 흐트러짐없이 이끈다』는게 선정 이유다. 『별로 상을 타본 적도,안달한 적도 없어 수상에는 별다른 소감이 없다』는 金씨는 그러나 『야정』의 집필기간을 둘러보면 『치가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야정』에는 기초자료 조사 2년,집필 5년등 총7년이 소요됐다.또 현장 답사비로만 2억여원이 들었다.
청나라가 그들의 선조인 여진족의 발원지로 신성시하며 이민족의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던 만주 지방.1860년대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해 들어가며 만주 개척사가 시작된다.『야정』은 학정과굶주림을 등지고 새삶을 찾으러 만주로 들어가 이민족 지배의 가렴(苛斂)과 비적들의 주구(誅求)를 당하며 항일 독립전쟁의 초석을 놓고 오늘 2백만 중국조선족의 터전을 닦은 만주 이민 1세대의 억센 삶을 재현하고 있다.
야생에 던져진 사내와 계집들이 내뱉는 싱싱한 토종 모국어를 통해 읽을 맛을 내며 작가는 고통스런 시대에 우직하면서도 강인하게 버텨온 우리 선조 민초들의 삶을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물론 지형이나 언어의 사실성을 위해 金씨는 8번이나 중국을 드나들며 백두산과 압록강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한 일간지에 북한지역을 무대로 고려무신정권 시대를 그리다 직접 발로 그곳에 가볼 수 없어 「절필선언」으로 비화된 경험까지안고 있을 정도로 金씨는 현장답사에 철저한 발로 뛰는 작가다.
金씨는 이제 소설의 진한 농도,그 함축미를 위해 연재는 피하겠다고 한다.또 민초등 거대한 덩어리로서의 인간보다 이 시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사람다운 사람의 심성과 삶을 다뤄보겠다고 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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