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Whisky, 세월의 향을 마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전 세계에서 1초에 두 병씩 팔리는 시바스 브러더스의 위스키 발렌타인. 조니워커·J&B와 함께 세계 3대 스카치 위스키로 꼽힌다. 매년 590여만 상자(9L 기준)가 소비된다. 1989년 한국에 처음 출시된 이후 국내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기는 위스키다.

스카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내의 증류소에서 만들어 낸 원액을 이용한다. 이 원액은 증류소에 따라, 제조된 해에 따라 향과 맛이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발렌타인은 1827년 조지 발렌타인이 만들어 낸 이래 똑같은 맛일까. 그 비밀은 마스터 블렌더가 지니고 있다.

발렌타인의 마스터 블렌더 샌디 히슬롭(43·사진右). 180년 맛의 비법을 아는, 지구상 딱 한 사람이다. 이달 초 스코틀랜드 키스에 위치한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에서 그를 만났다.

◆세월을 음미하라=히슬롭은 “위스키를 즐긴다는 건 수십 년의 세월이 선물한 향을 음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터 블렌더 역할의 95%는 새로운 향과 맛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내려온 향과 맛을 지키는 것”이라고도 했다. 발렌타인은 글렌버기 위스키 원액을 기본으로 50여 종의 원액이 결합돼 만들어진다. 그 비율과 종류는 히슬롭이 결정하며 그 내용은 극비다.

그는 “발렌타인은 벌꿀의 달콤함과 과일·꽃의 향이 조화를 이룬다”며 “발렌타인 17년산이라고 17년산 원액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원액의 최소한 연한이 17년이란 뜻”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현재 시판되는 발렌타인 30년산은 70년대 마스터 블렌더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며 “2038년 이후 시판될 발렌타인 30년산의 맛과 향을 유지하는 데 후각과 미각을 집중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50년산 이상을 만들기는 힘들다”며 고연산 위스키의 희소성도 설명했다. “위스키 원액을 오크통에 넣어 두면 해마다 2%가 증발하는데, 이를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고 부른다. 발렌타인 30년의 경우 오크통에서 60% 이상이 증발해 버린다”는 것이다.

◆후각을 중시하라=그가 말하는 위스키의 특징은 색이 진하다고 오래된 술이 아니고, 오래 숙성된 술일수록 깊고 강한 향이 나면서 맛이 더 복잡해지며 입 안에 오래 남는다는 것. 그래서 제대로 위스키를 즐기려면 여러 감각을 동원해야 한다. ① 먼저 잔을 45도 정도의 각도로 기울여 그 색을 감상하고(시각) ② 향을 음미한 뒤(후각) ③ 조금 마셔 입에서 굴리면서 맛을 충분히 느끼고(미각) ④ 마지막으로 천천히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촉각)을 즐기라고 말한다. 특히 오감 중 후각을 가장 중시한다. 오랜 기간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스며든 ‘시간의 향’을 음미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80%의 맛은 코를 통해 인식된다.

가짜 양주에 속지 않는 ‘관능 테스트’도 귀띔했다. 일반인의 경우, 양주를 마실 때 40도가 넘는 알코올 자체의 도수가 너무 강해 향과 맛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양주와 물을 섞어 비율을 1대1로 맞춘 뒤 향을 맡으면 나쁜 술의 경우 역한 알코올 냄새만 남는다. 반면 고급 위스키에선 수십 년간 오크통에서 스며든 바닐라·과일향 같은 오묘한 향취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또 자신은 발렌타인 17년산을 좋아하지만, 초보자에겐 탄산수처럼 톡 쏘며 가볍고 상큼한 12년산을 추천했다.

키스(영국)=박현선 기자

◆샌디 히슬롭=1992년 위스키 업계의 전설적인 마스터 블렌더 잭 구디의 제자가 된 뒤 여러 비법을 전수받고 95년 발렌타인 블렌더로 임명됐다. 2005년 8명의 블렌더 중 5대 발렌타인 마스터 블렌더 자리에 올랐다. 마스터 블렌더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 책임자를 말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