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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언제까지 ‘치매’라고 불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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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추석 연휴 때 시골 고향에 갔다가 우울한 소문 두 편을 전해 들었다. 80대 노인인 어르신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는 대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아들이 연휴를 맞아 고향에 홀로 남은 어머니를 찾아왔는데, 이 노인네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더라는 소식이었다. 이웃 사람들은 “어제도 봤는데…”라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혼자 밥 잘해 잡숫고 경로당 오가며 그럭저럭 지내는 눈치기에 안심한 게 탈이었다. 파출소에 연락한다, 병원을 뒤지고 다닌다, 뒤늦게 부산을 떨었지만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얼마 전 세상을 뜬 할머니 이야기. 오랫동안 중풍과 치매에 시달렸다고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자식들도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산 사람을 그렇게 굶겨 죽이다시피 할 수 있나”라며 어른들은 혀를 찼다. 밥을 많이 먹으면 배설량이 많아져 이불이고 옷가지고 다 망쳐 놓는다며 자식들이 끼니를 거의 챙겨 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뭇가지처럼 삐쩍 마른 고인의 몸피를 목격한 동네 사람이 몸서리치며 분개하더라고 했다.

모레(21일)는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날을 ‘치매 극복의 날’로 명명해 갖가지 기념행사를 벌인다. 전재희 장관이 나서서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할 예정이고, 오늘부터 26일까지인 치매 주간 동안 전국 118곳 보건소에서 모든 나이의 국민을 대상으로 치매 조기검진 서비스를 한다. 치매 환자의 70%는 앞에 언급한 할머니처럼 까닭 없이 집 밖을 배회하는 증상이 있다. 치매 주간에 각 지자체와 경찰서, 노인복지시설을 통해 ‘실종 치매노인 발생 시 대처요령’ 홍보물도 나누어 줄 예정이다.

일본의 경우 단순한 예방·치료 차원을 넘어 일반인이 참여하는 ‘치매 환자와 더불어 살기’ 운동이 한창이다. 일정한 교육을 거쳐 ‘인지증(치매) 서포터’ 자격을 주는 것이다. 주로 대형 수퍼마켓이나 은행, 아파트 경비회사들이 직원을 보내 교육받게 하고 있다. 치매 노인의 곤혹과 어려움을 자주 접하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2005년 후생성 주도로 시작된 서포터 양성 사업은 지난달 말 현재 44만9188명이 과정을 이수했을 정도로 성황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는 등 우리나라의 치매 정책도 부족한 재원으로나마 점차 선진국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이참에 ‘치매’라는 용어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매 증상이 꼭 알츠하이머병에서만 오는 게 아니므로 ‘알츠하이머의 날’을 ‘치매 극복의 날’로 번역한 것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꼭 어리석을 ‘치(癡)’에 어리석을 ‘ 매’라는, 부정적인 한자들로 병을 지칭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미국 대통령도, 천하의 석학도 가리지 않고 찾아가는 게 치매 증상이다. 일본에선 4년 전부터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사실 재작년에 우리 보건복지부도 치매를 대신할 새 용어를 검토했었다. 일반 국민과 관련 학계·협회의 의견을 골고루 물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당시 참고할 만한 대안이 많이 나왔다. 인지장애·인지성장애·상실증·인지상실증·상실병(한국노년학회), 인지쇠약증(대한간호협회), 인지저하증·인지증·우노증(대한노인회) 등이 추천되었다. 일반 국민으로부터는 애기병·노유증(老幼症)·노심증(老心症) 같은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 용어이므로 함부로 바꾸기 어렵다’(대한의사협회)거나 ‘치매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이 정착된 후 명칭 변경을 논의하는 게 순서’(한국치매가족협회)라는 신중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인지저하증·인지쇠약증·인지장애 같은 단어가 새 용어로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어리석고 아둔한’이라는 느낌을 벗어나야 한다. 기왕에 우리말 다듬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립국어원 같은 곳에서 새 이름 정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좋겠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