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불안한 태국 시위대 “탁신 하수인 새 총리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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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4일 방콕 일원에 대한 비상사태 해제로 며칠 잠잠하던 태국 정정이 다시 혼란스러워질 전망이다. 여권이 정국 안정을 위해 강경 일변도인 사막 순타라웻 전 총리 카드를 접고 합리적이며 대화 지향적인 솜차이(61) 교육부총리를 내세워 총리로 선출했지만, 반정부 세력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새 총리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매제라는 사실에 반정부 세력은 흥분하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정부청사를 점거하고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민주연대(PAD) 잠롱 스리무랑 공동대표가 17일 새 총리를 탁신의 하수인으로 규정하고 총리로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못박은 것은 험난한 태국 정국을 예고하고 있다.

부패 의혹을 받고 있는 탁신은 물론 친탁신 세력 제거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PAD가 새 총리와 대화로 정국을 풀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얘기다.

솜차이가 연정의 중심인 ‘국민의 힘(PPP)’의 부총재이고 합리적 인물이긴 하지만, 당내에서 확고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정국 안정에 부정적 요인으로 지적된다. 그는 판사 출신이면서도 1990년대 타이항공과 국영 석유회사인 PTT, 크룽타이 은행 이사를 지내는 등 경영인으로도 오래 활동했다. 그러다 처남인 탁신의 정치적 영향력에 힘입어 99~2006년에 법무부 차관과 노동부 차관에 발탁됐다. 지난 2월 취임한 사막 전 총리 정부에서는 탁신의 도움으로 교육부총리와 PPP의 부총재를 지냈다. 당내 그의 지지세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초 사막 전 총리를 새로운 총리 후보로 밀었던 PPP 의원들이 솜차이를 총리 후보를 바꾼 데는 그의 부인의 당내 영향력이 컸기 때문으로 태국 언론은 보고 있다. 취임 후 그가 반정부 세력과 대화를 한다 해도 탁신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다.

2006년 탁신 전 총리를 실각시킨 군부의 향배도 문제다. 현재 군은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탁신 세력 제거를 노리는 PAD 편을 들고 있다. 이달 초 비상사태가 선포됐지만 군이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을 거부한 것이 좋은 예다.

여기에다 국민의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89) 국왕이 PAD와 군에 대한 막후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낙관적인 분석도 일부 있다. 합리적인 성격의 솜차이가 수억 달러에 달하는 탁신의 국내외 재산 처리와 부패 혐의 사법처리 수위를 마련해 반정부 세력과 군 설득에 성공하는 경우다. 물론 여기에는 영국에 망명 신청을 해놓은 탁신이 동의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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