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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자전거로 일본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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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20년대 암울했던 일제 식민통치시절 조선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줬던 두 사람이 있었다.하나는 하늘의 사나이 안창남(安昌男),다른 하나는 지상의 스피드왕 엄복동(嚴福童)이었다.당시 민간에선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 『떴다 보아라 안창남,내려다보니 엄복동의 자전거』가 유행했다.
1900년 서울 무악재 부근에서 태어난 안창남은 20세때 일본으로 건너갔다.오사카(大阪)에서 자동차학교를 다닌 뒤 도쿄(東京)로 가 비행학교에서 비행술을 배워 21년 일본 항공국이 실시한 비행사시험에 우등으로 합격했다.안창남은 2 2년 12월10일 서울 여의도 상공에서 5만여 관중앞에서 모국방문 시범비행을 가져 조선인의 긍지를 과시했다.그후 중국으로 건너가 한 군벌(軍閥)이 운영하는 비행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30년 4월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엄복동은 1892년 서울 오장동에서 태어났다.보통학교 졸업후한 자전거상회에 들어가 일하면서 자전거선수로서 소질을 발휘했다.1913년 4월 전조선자전거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28년 전일본선수권대회까지 15년간 엄복동은 무적의 왕자( 王者)였다.그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경기도중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승리를 쟁취했다.특히 일본선수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긴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엄복동은 독특한 주법(走法)을 가지고 있었다.시합중간엔 절대로 선두에 나서지 않고 3~4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한 바퀴를남기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전력질주해 승리를 차지하곤 했다.
마지막 한 바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관중들 은 『올라간다!』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열광했다.은퇴후 엄복동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불우한 생활을 하면서 떠돌다 6.25전란중 동두천부근에서 비행기 폭격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졌을뿐 묘소조차 남아 있지않다. 지난 14일 올해 72세 된 서울 관악구 사이클연합회장장영헌(張永憲)씨가 서울 여의도에서 일본 히로시마(廣島)까지 7천㎞를 자전거로 달리는 대장정을 시작했다.張씨는 내달 15일도쿄에서 민단(民團)주최 광복절행사에도 참가한다.고 희(古稀)를 넘기고도 젊은이를 능가하는 기백(氣魄)에 감탄하는 한편으로식민지시절 조선의 영웅이었던 사이클리스트 엄복동의 투혼(鬪魂)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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