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3.볼것 없고 가기도 힘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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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웨덴 관광객 로슨 사라(39.여)는 서울 시내관광을 하기 전부터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지난13일 오전10시부터 오후1시까지 3시간동안 남산공원.동대문시장.창덕궁.비원을 도는 투어를 예약해두고 있었다.
출발장소는 소공동 롯데호텔.
그러나 정작 관광버스가 나타난 것은 약속시간보다 40분 지난오전10시40분이었다.운전기사는 『길이 막혀서…』라고 설명했다. 첫 코스였던 남산공원 관광은 「빠듯한 시간」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생략됐다.동대문시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10시55분.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시장을 돌아본뒤 창덕궁으로 향했다.쇼핑할시간도 없었다.가이드는 『오전11시30분까지 창덕 궁에 입장해야 한다』며 『창덕궁까지 가는 길이 막힐지 모르니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그녀는 『요금을 2만2천원이나 냈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본 것은 별로 없고 짜증만 났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17년째 일본인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 베테랑 가이드 최순자(50)씨.
『보통 시내호텔에서 묵고 저녁식사는 강남 신사동에서 합니다.
어쩌다 러시아워에 걸릴땐 남산 1호터널을 지나는데 1시간 이상걸릴 때가 있어요.』 이럴때면 가이드 17년 경력의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등에 진땀이 흐른다.그녀는 『항상 교통난을 염두에두고 코스를 돌기 때문에 제대로 관광지를 보여주지 못해 외국인관광객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고야(名古屋)의 미용기자재 업체 메이호사가 실시하는 사원여행에 참가한 가와조 요시유키(川添義行.43)는 지난 12일부터15일까지 경주.서울을 돌며 관광했다.
『경주에서 석굴암을 꼭 보고 싶었어요.그러나 「동대구역에서 오후2시10분 서울로 출발하는 열차를 제시간에 타야 한다」고 해 일찍 경주에서 출발해야만 했지요.결국 불국사.박물관.천마총세곳만 보는데 만족해야 했습니다.그런데 그날은 길이 잘 뚫려 동대구역에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역주변에서 1시간이상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교통난도 문제지만 한국을 자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볼거리 부족」이 큰 불만이다.사업차 한국을 자주 찾는다는 호주인 로버트 에임스버리(47)는 『서울에서 할 수 있는 투어는 고궁 몇군데와 롯데월드.민속촌에 가는 것이 고작』이 라며 『홍콩에선 호텔마다 다양한 시내투어 상품이 많아 오히려 고르는데 불편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그는 지난 5월 홍콩에 5일동안 머무르면서 「인상적」인 관광으로 경마(競馬)관광.마이포 습지대의 조류관찰관광을 들었다.
***밤에는 갈곳 더없어 관광가이드들은 볼거리가 없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평가절하」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이드 장미혜(27.여)씨는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한국은5천년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라는 것을 관광홍보책자에서 읽고 큰 기대를 걸었는데 별것이 없다는 말을 들을때 무척 곤혹스럽다』고 말했다.외국인들이 『장구한 역사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축제가 있었을텐데 없어진거냐,아니면 내가 왔을때만 하지 않는 것이냐』고 말할 때는 얼굴까지 붉어진다는 것.
올들어 한국에 세번 왔다는 고토 유키히로(加藤幸弘.41)는 「야간관광」에 대해 할말이 많다.
『한국에는 밤문화가 없는 것 같아요.경주고 서울이고 저녁만 되면 외국인이 갈만한 곳이 없어요.호텔 칵테일바에서 술이나 마시는 것이 고작이에요.돈을 쓰고 싶어도 쓸데가 없어요.』 아이디어 부재,「대량생산」방식의 관광상품도 외국인의 한국행을 가로막고 있다.지난 15일 경복궁에서 만난 스위스인 마이키 헬싱어(39)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이디어 不在 원인 그는 『한국에 명산이 많다고 해 록클라이밍(암벽등반)을 하고싶어 여러 여행사에 문의해 봤지만 그런 상품은 전혀 없었다』며 『스위스에서는 전화 한통화면 암벽등반은 물론 빙벽타기.리지등반등 다양한 등산투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여행사 김미혜(30.여)계장도 여행상품이 빈약해 부끄러웠던 경험을 고백했다.그녀는 『독립기념관을 가고 싶다는 일본인 여행객이 있었는데 이미 개발된 상품이 없다보니 천안까지 열차편을 이용한 뒤 택시를 이용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 어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관광객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의 관광상품개발이 시급한 것이다.
기획취재팀 길진현.하지윤.이순남.이재훈.이훈범.양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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