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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글로벌 식량 체계 뜯어 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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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계의 식량공급 시스템이 혼란스럽다. 지난 30년 동안 하락세를 지속하던 식량 가격이 4년 전부터 가파른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곡물 가격은 2004년에 비해 두 배가 넘게 올랐다. 다른 식량 가격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개발된 자연자원과 지구온난화의 악영향, 그리고 비료와 연료 값의 폭등으로 인해 1970년 이후 가장 심각한 글로벌 식량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먼저 주요 식량 생산 기지의 기후가 나빴고, 경제성장으로 인해 육류와 낙농 관련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유가 폭등과 식량 재고 급감, 식량을 대체 연료로 만드는 시도, 그리고 농촌 인프라에 대한 투자 부족도 일조했다. 여기에 식량생산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와 개도국의 식량 생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공공재에 투자를 소홀히 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하늘 모르고 치솟는 식량 가격은 빈곤층에 직격탄을 날렸다. 빈곤층이 아닌 계층에도 구매력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30여 개국 이상에서 식량 관련 시위가 일어났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연구개발에 대한 불충분한 투자와 적절치 않은 정부 정책이 식량 위기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세계 인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식량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이 늘어나는 수요를 채울 수 있게 농민들을 도와줘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식량을 더 적은 땅과 더 적은 비료, 더 적은 물과 에너지를 쓰면서 환경에 영향을 적게 주는 방향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도 뒤늦게나마 이런 점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농촌의 빈곤층이 기아로 고통받더라도 그들이 침묵하고 있는 한 정부는 편하게 이들을 무시해 왔다. 하지만 도시 지역에 식량 관련 시위가 일어나면서 정부들은 자신의 정통성이 도전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개도국들은 농업 생산량으로 얻는 가치의 0.5%만 농업 연구에 투자한다. 이는 턱 없이 부족한 것이다. 적어도 생산량으로 얻는 가치의 2%는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선진국에 비해선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현대 과학은 땅과 물의 생산성을 높여 지속 가능한 농산물 생산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뭄이나 홍수, 해충에 의한 피해를 적게 입고 지구온난화 영향도 적게 받는 품종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기본 곡물의 영양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술 개발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철분·비타민A·아연 성분이 강화된 곡물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겪는 미량 영양소 결핍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생산에서 소비까지 모든 단계에서 식품 안전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병을 막고, 농약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는 일이 대표적이다. 옥수수·콩·기름야자나무 등을 연료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체에너지 원료를 연구 개발하는 데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아와 영양 결핍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농촌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에게 도로와 시장, 제대로 된 제도와 기술, 기본적인 의료 체계와 교육이 갖춰져야 이들이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 낼 수 있다. 각국 정부는 지난 30년간의 지속적인 식량 가격 하락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데 대한 편한 핑계거리로 삼아왔다. 국제 기구들은 공정한 식량 교역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식량 교역을 왜곡하는 미국,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정책은 사라져야 한다. 각국 정부가 적절한 정책을 취하고 과학에 투자할 때만이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천연자원으로 세계 인구를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퍼 핀스트럽-앤더슨 미 코넬대 식량영양 공공정책과 교수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