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 구긴 한나라 … 홍준표 사퇴는 만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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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3시45분에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홍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형수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2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자신이 진두지휘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새벽까지 진통만 거듭하다 무산된 뒤였다.

홍 원내대표는 추경안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을 자유선진당과 손잡고 제압해 보려 했다. 그렇게 서두른 건 추석 민심을 잡아보겠다는 의도였다. 예결위원회 의결정족수가 차지 않자 예결위원이 아닌 의원을 급하게 채워넣으려다 민주당에 시비가 걸린 것이다. “절차 위반”이란 말에 선진당도 돌아섰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국회법에 어긋난다”며 홍 원내대표의 직권 상정 요청에 퇴짜를 놨었다.

당내에선 “사·보임 절차도 제대로 못 챙겼다”며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한구 예결위원장도 “예결위원 사·보임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실수’를 토로했다.

결국 홍 원내대표는 이날 새벽 박희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책임을 지겠다”며 사실상 사퇴할 뜻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임태희 정책위의장, 주호영 원내 수석부대표 등 원내대표단이 동반 사퇴할 뜻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가 실제로 물러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당장 박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항해를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선장이 뛰어내리면 되겠느냐”고 그의 사퇴설을 무마하고 나섰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어젯밤(11일) 상황을 홍 원내대표만의 책임이라고 볼 순 없다”며 “대안 부재인 상황에서 지금 원내사령탑을 교체하는 건 옳지 않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자살골’ 소식에 민주당은 기세가 올랐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세균 대표는 “예산안 날치기는 전두환 시대를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사라진 일”이라며 “그나마도 성공하지 못한 건 국민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미숙하고 졸렬한 군사작전을 감행하다 자기 발등을 찍었다”며 “실질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에 도움이 되는 추경예산이 되도록 추석 이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실수에 대한 갖가지 해석도 나왔다. 최인기 예결위 간사는 “홍준표 원내대표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이어 또 강행처리하지 못하면 위상에 문제가 생긴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장혁·정강현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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