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높은 금리로는 외평채 발행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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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下)이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경예산안 통과가 무산되자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 앞서 4일 그는 “11일이면 9월 위기설이 과장됐다는 게 판가름난다”고 말했다. 국채 만기일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12일 외평채 발행은 연기됐다. [연합뉴스]

정부가 12일 10억 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연기했다.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투자자들이 가산금리를 높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 동향을 좀 더 살핀 뒤 외평채 발행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외평채 발행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날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국제유가 하락과 미국 증시 상승에 힘입어 34.68포인트(2.4%) 오른 1477.92로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0.4원 내린 1109.1원을 기록했다.

미국에서 협상 중인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은 11일 오후(현지시간) “현지 투자자들이 예상 외로 높은 수준의 금리를 요구해 발행을 미루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외평채 발행 금리를 ‘미국 국채금리+2%포인트 이하’로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주요 투자자들은 가산금리를 ‘2%포인트 이상’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부실 사태로 국제 금융시장의 돈줄이 마른 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불거지면서 채권 발행 여건이 나빠진 점을 내세웠다. 정부는 나쁜 조건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외평채 발행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국내 시장을 혼란으로 몰았던 9월 위기설을 잠재우고, 한국 채권에 대한 기준(벤치마크) 금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9월 위기설은 외평채를 발행하기도 전에 사그라졌다. 외국인이 채권을 팔고 한국을 떠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되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남은 것은 기준 금리 확인이다. 만약 높은 가산금리로 외평채를 발행하면 국내 금융사나 기업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연쇄적으로 부담이 커진다. 민간기업이나 금융사가 발행하는 채권의 가산금리는 ‘외평채 가산금리+알파’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최종구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벤치마크 금리가 높으면 민간기업도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 민간기업과 공기업이 발행하려는 해외 채권은 100억 달러 정도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도 한국의 이런 결정에 수긍하는 모습이다. 신 차관보는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의 기본 체력에 문제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채권을 사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국제 시장이 좋지 않아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월가의 돈줄이 마른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번에 외평채를 발행하지 않아 기업들은 당장 해외에서 높은 가산금리를 적용받을 처지다. 한 채권 펀드매니저는 “정부가 자신 있게 말해 발행 조건이 다 합의된 걸로 믿었는데 결과적으로 정부 말을 또 못 믿게 됐다”고 말했다.

김종윤·김영훈 기자

◆외국환평형기금채권=원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고 투기적 외화의 유출입으로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해 시장에 일부 개입한다. 이 기금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 외평채다. 가산금리가 높으면 부담해야 할 이자가 많아진다. 1988년 이후 여덟 차례 해외에서 외평채를 발행했다. 잔액은 40억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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