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미군사령관 취임식 취재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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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진기자에게 현장은 생명이다.그러기 때문에 한장의 진실을 담은 사진을 얻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거는 종군기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 현장을 사진기자들이 스스로 포기해야하는 불행한 사태가 9일 벌어졌다.
사태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미8군은 서울용산 미8군 영내에서 9일 주한미군사령관 취임식이 있다는 사실을 하루전인 8일 각 언론사에 알려왔다.아울러 취재기자명단을 통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부대입구에 도착한 9일 오전 20여명의 타사 기자들이 영내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다음순간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미군 1명이 기자들 앞에 나와 카메라등 취재장비를 입구에 풀어놓을 것을 요구했다 .영문을 모른채 시키는대로 한 기자들의 눈앞에 셰퍼드 군견을 앞세운 미군이 나타났다.셰퍼드들은 일일이 장비의 냄새를 맡았다.
『갑자기 웬 군견이냐』는 기자들의 항의에 미군측은 『혹시 안에 폭발물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사하는 것일 뿐』이라는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응수했다.
더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영내에 들어간뒤 대기실에서 행사시작 한시간전부터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안내를 맡은 미군은 취재시 지켜야할 사항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준수사항을 어길 경우에는 앞으로 일체의 특권을 주지않겠다는 엄포까지 나왔다.
『우리 대통령을 취재할 때도 한번밖에 검색을 받지 않는데 도대체 특권은 또 무슨 말이냐』는 항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기자들은 생명처럼 여기는 취재현장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혹시라도 이날의 해프닝이 미군당국의 편협한 자국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양국관계의 손상을 막기 위한 미군당국의 자성이 있기를 바란다 .
김형수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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