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Who&Why] 영어 몰입 권노갑, 78세에 목표 수정한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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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의원 비서관, 평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한국 정치에서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권노갑.

지금도 개그맨들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성대모사할 때 “어이~ 갑이 어디 있남?”이라고 한다. 그 ‘갑이’가 바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 시절 ‘권동설’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세상은 권노갑을 중심으로 돈다”는 의미다.

그런 권 전 고문이 11월 13일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 여의도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뭐하러 가느냐가 더 놀랄 일이다. 영문학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단 미국 미주리대에서 연수를 한 뒤 내년 3월 다시 하와이대로 옮긴다. 정식 영문학 석사 학위 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몸을 푸는’ 과정인 셈이다. 그는 1년간 연수하며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GRE·TOEFL 준비를 할 계획이다.

1963년 6대 총선을 앞두고 목포상고 4년 선배인 DJ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45년간의 그림자 정치 인생을 접고 그의 나이 78세에 인생 2막에 도전하는 셈이다. 뜻밖의 일로 보이지만 사실 그와 영어의 인연은 깊다.

권투에 심취해 전국학생선수권자였던 목포상고 시절 그는 권투 연습을 하면서도 늘 영어책을 끼고 다녔다. 영어 공부를 할 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얘기다. 동국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부전공으로 야간부 영문학과를 다녔다. 그는 “벤또를 두 개 싸 갖고 낮엔 혜화동 경제학과에서, 밤엔 필동의 야간부 영문과에서 공부했다”며 “양주동 박사의 ‘영시 100선(選)’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대학 2학년 때 6·25가 터지자 그는 부산의 유엔군(주한 미군의 전신)에 입대, 3년간 통역관으로 지냈다. 제대 후엔 미국인이 운영하던 무역회사 아메리카 트레이드 컴퍼니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이런 인연으로 대학 졸업 후엔 영어교사(목포여고)를 직업으로 택했다. 교사의 길은 DJ를 따라 정치판에 들어서며 3년 만에 끝났지만 젊은 시절의 꿈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고 한다.


정치인 시절에도 그는 틈틈이 ‘워싱턴 포스트’ 등 영자신문을 즐겨 읽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DJ가 기자들과 저녁을 같이한 자리에 그가 배석했다. 얘기 끝에 화제가 영어로 흘렀고, 자연 권 전 고문의 ‘영어 사랑’이 화제에 올랐다. DJ는 권 전 고문을 향해 “근디, 이 사람이 영어를 좀 한다고 하는디 난 통 영어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네”라고 조크해 폭소가 터졌다.

96년에는 『백악관 가는 길』이라는 책을 자신의 이름으로 번역 출판한 적도 있다. 2001년 미국의 한 인권단체에서 상을 받았을 때는 수상 소감을 영어로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근 그는 존 F 케네디,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의 연설문과 영시(英詩) 수십 편을 손수 번역해 엮은 책 『내 마음을 흔든 명연설과 4월의 시』 출간도 앞두고 있다.

그의 인생 2막 선택에 대해 측근인 이훈평 전 의원은 “권 전 고문은 평생 영어 공부를 한 사람”이라며 “그를 아는 사람은 이상할 게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가 영어 공부에 몰입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에서다. 2003년 8월 15일 현대그룹에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2007년 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3년6개월여 동안 수감됐었다.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던 그는 영어로 된 성경을 읽으며 분을 삭였다고 한다. 사면 직후엔 동시통역사에 도전, 서울 강남의 유명 통역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 동시통역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유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권 전 고문이 밝힌 이유가 재밌다. “나가 영어는 좀 된디 국어가 안 돼 분다.”

요즘 그는 매일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 들러 대학교수에게 영어 과외를 받으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영자신문인 IHT-중앙데일리를 통해 국내외 뉴스를 접한다. “하루도 영어책을 손에서 놓는 날이 없다”는 그는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글을 읽고 공부하는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한다.

지난 4월 총선 때 정가에는 권 전 고문의 정계 복귀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사면만 됐을 뿐 150억원에 이르는 추징금을 내지 못해 복권되지 못한 그는 움직일 형편이 아니었다. 당시 전남 무안-신안과 광주 북갑에서 각각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홍업 전 의원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선거를 도운 게 그의 마지막 정치였다.

이 전 의원은 “정계 복귀설은 그를 좋아한 사람들이 아쉬워 꺼낸 말”이라며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걸 본인이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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