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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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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논의한 얄타회담의 세 주역,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소련의 스탈린 최고인민위원은 모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했다.

루스벨트는 1945년 얄타회담 두 달 뒤 세상을 떴다. 숨지기 1년 전부터 그는 자주 숨이 차 괴로워했다. 고혈압으로 심장 근육이 약해진 탓이었다. 병마 탓인지 회담에서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지나치리 만큼 많이 양보했고, 이 회담은 미국 외교사에 ‘굴욕’으로 기록된다.

스탈린은 회담 8년 후 죽었다. 주치의가 ‘의사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뒤 의사를 믿지 않았던 그는 53년 크렘린에서 파티가 끝난 뒤 쓰러져 곧 혼수 상태에 빠졌다. 사흘 뒤 마비되지 않은 왼손을 높이 들었다가 힘없이 떨어뜨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어쩌면 이 뇌졸중은 인류 평화에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스탈린이 제대로 된 약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비화됐을 수 있어서다.

산소호흡기를 쓴 채 얄타회담에 참석한 처칠은 그로부터 21년을 더 살았다. 비만·고혈압에다 항상 파이프를 물고 다니던 그는 분명 뇌졸중 고위험 집단에 속한다. 그러나 60년대에 개발된 고혈압 약과 낙천적인 성품 덕분에 81세까지 현직 정치인으로 활동했고 91세까지 장수했다. 그도 몸의 왼쪽이 완전히 마비된 세 번째 뇌졸중엔 굴복했다.

최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로 유명해진 뇌졸중은 ‘뇌(腦)가 갑자기(卒) 맞았다(中)’는 의미다.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과 막히는 뇌경색을 모두 포함하는 병명이다. 단일 질환으론 국내에서 사망률 1위인 병이다.

영어론 ‘스트로크(stroke)’다. 테니스 선수가 공을 라켓으로 때리듯(스트로크) ‘꽝’하고 뇌에 타격을 가해서다. 미국의 젊은이에게 스트로크는 ‘쓰다듬다’ ‘어루만지다’ 등 애정을 떠올리게 하지만 중·노년층에겐 심히 우울한 단어다. 스트로크가 일단 발생하면 완치가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한방에선 중풍(中風)이라 한다. ‘바람에 맞았다’로 해석된다. 여기서 ‘풍’은 갑자기 몰아치기도 하고 곧 잠잠해지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바람이다. 그 세기에 따라 맞는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이번에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예사롭지 않아 뵌다. 그 바람이 ‘광풍’이 되지 않도록 차분하게 잘 대처하자.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