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週를열며>진리는 자유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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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가 오랜 민주화의 진통과정을 겪으면서 비로소 자유의 의미를 체험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87년 6.29선언 이후부터인 것 같다.오랫동안 억압되고 누적돼온 온갖 부조리와 모순들이분출돼 또 다른 긴장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 온지 도 벌써 10여년이 됐다.이 격동의 시대를 숨돌릴 틈도 없이 달음질쳐 온 우리가 현재 느끼는 보편적인 체험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눈에 띄는 희망적인 현상중 하나는 인간 각자의 존엄성에 대한자각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자기권리를 옹호하고 신장하려는 올바른 시민의식이 개인적으로,집단적으로 어디에서나 표출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그리고 X세대라 불리는 청소년들이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솔직하며 인격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인간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이런 의식은 자유의 체험과 자각을 뜻하며,보다 더 자유 로워지려는 인간의 소망은 그 온전한 행사를 가능케 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조건들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로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과연 자유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자유란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방종이 아니다.그것은 선(善)을 지향하는 자유며,선을 행할 때만 인간은 행복을 맛볼수 있다.그러므로 선은 자유가 지향하는 목표다.
더 나아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웃을 향해 개방돼 있고 이웃을필요로 하는 사회적인 존재다.따라서 인간이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타인의 의지와 일치시키며 조화를 이룰 때가능한 것이다.
선을 행하기 위한 타인과의 일치와 조화는 타인의 자유의지와의올바른 관계와 그 기초인 진리의 판단기준을 요구한다.자유란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한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와 정의에 기초한 상호유대가 이뤄지는 그곳에 참으로 존재한다.그러기에 진리는 진정한 자유의 조건이며 척도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근저에는 자주 선과 악,참과 거짓,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자기 자신의 이익.편의.쾌락등에 둠으로써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규범인 진리를 배제하고,진리를 벗어나는데서 자유를 찾으려는 경향이 큰 것같다.
희랍적 사유에서 진리(Altheia)란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실제(realitas)가 밝혀지고 드러남을 뜻한다.그러기에 진리는 인간의 이성을 비추는 빛으로 다가온다(Veritas est Lux mea).성(聖)토마스 아퀴나스는 영 원한 진리인 신법(神法)을 『모든 것을 그 목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적(神的)지혜의 원형』이라고 말했다.이 진리와 자유의 관계는 단지 인간 개인의 윤리적 차원에만 해당되지 않고 사회생활 안에서 더욱 더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이 사회에서는 목전의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권리주장만 하는 일반 시민의 집단이기주의가 자주 목도되고 있다.이 사회를 지탱해주고 공동선(共同善)으로 이끌어가야 할 국가의 정책수행과 권력의 올바른 행사 가 어느 특정집단의 이익과 정치적 이유 때문에 변질되고 오도되는 것 또한자주 보게 된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과 세계화.「역사 바로 세우기」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고,우리사회 안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이 모든 과정이 더 높은 가치관.도덕성에 기초하고더 높은 진리에 기초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만일 정치적 활동을 이끌어 가고 통제할 최후의 진리가 없다면,지배자들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이념과 확신을 도구처럼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사회 회칙 「100주년」 46항) ◇필자 약력▶45세▶가톨릭대 신학부▶리옹가톨릭대▶구로1동.상계동성당주임신부▶프라도사제회 한국책임신부구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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