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개헌 논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시대가 바뀌면 나라의 운영체제도 바뀌는 게 정상이다. 몸이 커지면 몸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라의 운영체제는 헌법이다. 헌법은 법 중의 법이기에 태산 같은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헌법이 시대정신을 담는 데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 오래 가면 국민은 현실과 규범의 불일치에 시달린다. 낡은 규범은 국민의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몸에 맞는 꽤 괜찮은 헌법을 즐기고 있다. '1987년 시민헌법'이다. 6.10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양보를 얻어내 만들어낸 아홉번째 개정헌법이다. 시민의 요구에 대통령이 굴복한 시민헌법이다. 시민헌법 이전의 개정헌법들은 평균수명이 4년4개월이었다. 주로 권력강화와 연장을 위한 대통령의 헌법이었다. 이런 가운데 시민헌법이 17년간 늠름하게 자라줬다. 국민이 이 헌법을 사랑하고 잘 가꾼 탓이다.

그런데 이제 헌법을 일부 바꾸는 문제를 시민들이 생각해볼 때가 됐다. 대통령이나 차기 대선 주자들은 개헌 이슈를 먼저 꺼내기가 어렵다. 야망 있는 정치인일수록 순수성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지금의 헌법은 나라가 이른바 독재.반독재, 민주.반민주 구도였던 시대의 남한(南韓)만 생각한 헌법이다. 남한의 민주화가 전부였고,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기만 하면 선(善)이었던 그런 시대였다. 이 헌법은 또 정치적으로 1盧3金(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남은 사람들에게 다음 기회를 제공하자는 '돌려먹기 단임정신'이 충만했다. 여기에 한번 하고 마는 대통령인데 4년은 너무 짧고 전임 대통령처럼 7년은 너무 기니 중간을 잘라 5년으로 하자는 '주먹구구 임기합의'가 더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5년 단임의 대통령선거는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지방선거와 계속 1~2년 단위로 어긋나는 바람에 국력을 얼마나 분산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2006년부터는 3년 연속 전국선거를 치러내야 한다.

17대 총선으로 3金정치가 마감됐다. 한국사회는 '민주화 이후'의 시대로 이행했다. 한국정치의 공간도 남한에서 한반도 전체와 그 주변으로 확대됐다. 시대와 공간이 바뀌었으니 진취적인 상상력으로 개헌논의를 할 만하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