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만원 교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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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생각하면 이곳은 참으로 좋은 곳이다.화재의 염려가 없다.아닌 밤중에 수재(水災)를 입을 위험도 없다.강도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체포당할 공포도 없다.견고한 호위,주도한 배려속에 이 밤도 나는 황제답게 의젓하게 잠들 것이다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중에서) 중세시대 서양에서 감금(監禁)은 형벌이 아니었다.감옥은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을 가두는 수용시설이었고,범죄자 처벌의 중요수단은 사형.체형.추방이었다.16세기 이후 감금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수단으로 등장했다.먼저 영국에서 교정원(矯正 院)이 세워지고,이어 유럽대륙에서도 범죄자계도(啓導)시설이 설립됐다.수감자에겐 엄한 훈련과 고된 노동이부과됐다.
미국은 처음부터 감금을 주된 처벌수단으로 채용했다.1829년필라델피아에 설립된 이스턴 주립교도소는 독방감금을 원칙으로 했다.고독이 회개(悔改)에 도움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죄수는독방에 격리돼 교도관과 면회객외엔 만날 수 없 었고,엄격한 침묵이 요구됐다.그러나 19세기후반 처벌보다 교화(敎化)에 중점을 둔 행형(行刑)제도가 자리잡으면서 변하기 시작했다.수감자들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직업훈련이 실시되고,개별행형제.가석방제도가 도입됐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행형제도엔 특수화.다양화.실험화 경향이 두드러진다.보호관찰과 가석방제도를 적극 활용해 수감자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사회복귀를 지원하고 있다.한편 동등한 범죄에 대한 동등한 처벌이라는 기존원칙에서 개별행형제로 전 환하고 있으며,교정직(矯正職)공무원의 전문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도소.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재소자수가 6만3천여명으로 수용능력을 1만명이상 초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교도소 정원초과는 범죄가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지만,더 큰 요인은 사정당국의 지나친 엄벌주의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 이다.이같은상황에서 교정행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선진국에서 형벌은 개인자유박탈을 내용으로 하는 자유형(自由刑) 중심에서 벌금 등 재산형 중심으로 옮겨간지 오래며,공익노동.사회봉사명령 등이 널리 시행되고 있다.우리도 이제 무조건 잡아넣고 보자는 식의 법집행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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