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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올림픽출전 레슬링 김태우,여자하키 장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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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장마비가 잠시 서울 하늘을 비켜 간 26일 정오.불암산 자락에 자리잡은 젊음의 요람 태릉선수촌은 오히려 적막했다.애틀랜타올림픽을 불과 20여일 앞둔 시점이어서일까.태풍전야의 고요,바로 그것이었다.잠깐 스쳐 지나가는 선수들의 표정 속에서 결전을앞둔 긴장감이 엿보였고 처음 태극마크를 단듯한 앳된 선수들에게선 달뜬 모습이 비쳐지기도 했다.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그것은 젊은이들에겐 가슴 설레고 벅찬 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이같은 설렘도 서너번 거듭 되다보면 오히려 담담해지는것일까.한국선수 가운데 최고령이자 올림픽 최다출전기록(네번)을세우게 되는 레슬링자유형 1백㎏급의 김태우(金泰雨.34.주택공사)와 여자하키의 대들보 장은정(張銀貞.26.한국통신.세번째 출전)은 차라리 무덤 덤했다.이들은 한번도 뽑히기 어렵다는 올림픽대표를 두세차례나 해낸 자랑스런 얼굴들이다.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하는 이들의 감회와 남모르는 고통,환희의 순간들을 들어 보았다.
-이번 애틀랜타올림픽이 두 선수에게 주는 감회가 남다를텐데요. ▶김=그저 무덤덤합니다.다만 최근에 주위에서 자꾸 말들을 하셔서 「아,벌써 네번째구나」라고 느낄 뿐입니다.사실 그동안 참 힘들었습니다.그러나 개인적으론 영광입니다.동국대 3년때인 84년 LA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래 이번이 네번째지 만 4연속출전은 저뿐만이 아니고 사격(이은철)에도 있어요.
▶장=여고 3학년 시절인 88년 19세의 나이로 서울올림픽에첫 출전한 후 이번이 세번째 연속 출전이 됐어요.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이번 대회에 대비해 충분한 훈련은 하셨는지.훈련과정이나 목표를 소개해주시죠.
▶김=이번이 저에게는 마지막 기회입니다.끝이 중요하죠.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서울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게 가장 좋은 성적이었지요.LA올림픽(82㎏급)과 바르셀로나에서는 각각 5 ,4위를 했었지요.그래서 일종의 한계 같은게 있었는데 이번에는 금메달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훈련은 하루 네시간 매트훈련으로 체력관리를 하고 있습니다.경기 당일 컨디션(현재 90%)만 좋다면 메달권 진입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 니다.
▶장=하루 6~7시간 정도 훈련하고 있습니다.여자로선 참아내기 힘든 강훈련이지요.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체조로 훈련을 시작,밤10시30분쯤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하루 20바퀴씩 4백 트랙을 도는 러닝훈련이 제일 힘든데 말 그대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지요.그리고 틈틈이 트랙 내에서 스피드 파워와 인터벌 훈련으로 체력을 단련합니다.1주일에 닷새간 훈련하고 목요일오전에만 쉽니다.쉬는 시간은 거의 잠만 잡니다.저녁엔 야간감각훈련.비디오 분석 등을 합니다.밤에 실시하는 감각훈련은 안보고도 볼을 패스할 수있는 능력을 키우는 우리만의 독특한 훈련이지요. -일반인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훈련량인데 특별히 힘들 때는 언제입니까.
▶장=몸이 안좋을 때입니다.또 선배가 되다보니 후배들에게 항상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점이 힘듭니다.예를 들어 러닝할 때도 항상 앞장서야 하고….후배들보다 체력이 달리니까요.
▶김=저는 체력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이곳에 10여년을있다보니 대부분의 코치들이 후배인데 그 밑에서 선수생활을 하려니 자연히 갈등도 생기고….물론 후배코치들이 깍듯이 대해주고는있지만 문득문득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도 하지요.아무래도 가슴 속에 응어리가 지지요.
-우문이지만 이렇게 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계속하는이유가 무엇입니까.
▶김=1년에 3백일 가량씩 10년을 태릉선수촌에서 보냈습니다.이곳에 젊음을 바친 셈이지요.스포츠맨으로 성공해 보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도 어느정도 이뤘지만(그는 아시아권에서는 적수가 없다)왠지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그것 은 아마도 세계를 제패해보자는 필생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벌써 네번째 고개인데 어느덧 나이가 들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꿈,그것이 바로 그가힘들게 고개를 넘는 이유일 것이다).
▶장=저도 김선배와 비슷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선배 언니들의 손끝에까지 닿았다 사라져버린 금메달,그것을 기필코 움켜쥐기 위해서죠.
-체력유지를 위한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요.보약 같은 것을 자주 복용하는 편입니까.
▶장=저는 아무거나 잘 먹어요.그러나 시골(전남화순)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특별히 사슴을 고아 만든 한약재를 보내주셔서 주로 가을과 겨울에 먹고 있습니다(뱀탕을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엔 못먹는다며 펄쩍 뛴다).
▶김=친척이나 선배께서 때때로 뱀탕이나 보약을 보내주거나 시골(전북익산)어머니께서 한달에 한번 꼴로 개고기를 보내주시는데냉장고에 보관했다 먹곤 하지요.우스갯소리지만 제 아내는 시집와서 만지기도 싫어하던 개고기를 요리까지 할 수 있게 될 정도로체력보강에 신경을 써야했지요.
-하키의 경우 허리를 굽힌채 70분간을 쉴새 없이 뛰는 운동이라 남자들도 힘든 운동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장=3남1녀중 셋째인데 고명딸이라 처음 부모님께서 몹시 반대하셨어요.초등학교 때는 육상선수였는데 친구의 권유로 그냥 한번 해본다는게 이렇게 됐지요.그러나 대표선수가 된 후 부모님께서 적극 밀어주셨지요.지난해부터 (디스크로)허리가 안좋아 약을먹고 있는데 체력도 솔직히 예전보다 못해졌어요.몸이 안좋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흘린 땀이 아까워 다시 마음을 다그쳤지요.시집가면 그만둘 수 있을 거예요(웃음).
-우리 나이 35세면 레슬링선수로는 「환갑」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김=나이가 조금 들다보니 부상도 많아요.어떨 때는 목의 편도선이 붓고 몸에 열이 나 경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도장찍고 오라고 합니다.올림픽이 끝나면 일단 회사(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 금메달을 딴 뒤 주택공 사 부장으로 승진)에 남겠습니다.그후 기회가 주어지면 지도자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선수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김=『84년 LA올림픽 때입니다.당시 5위를 해 메달을 따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고향 어른들로부터 아버지께서 몹시 낙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저리도록 마음이 아팠습니다.더구나 당시집안 형편이 어려워 더 이상 운동을 하기 힘들었 지요.그래서 학교(동국대 체육교육과)졸업 후 교사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기도했어요.그때의 충격으로 5년쯤 방황했지요.그러나 어머니(정금덕.57)께서 간곡하게 다시 도전해보라고 권유하셔서 매트 위로 돌아왔습니다.
***메달 못땄을땐 창피해 눈물 ▶장=92바르셀로나올림픽 때였습니다.당시 당연히 3위를 할 줄 알았는데 영국팀에 패해 4위에 그쳤습니다.그런데 귀국하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부터 메달을딴 선수들과 따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달랐습니다.메달을따지 못한 우리들 은 무슨 죄인처럼 남의 눈에 안띄려 노력했고….금메달을 딴 핸드볼 선수들이 마냥 부러웠습니다.우리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선수단복 대신 일반복장으로 갈아 입고 선수단이 모두 빠져 나온 뒤 남에게 들킬새라 도 망치듯 나왔죠.그때의 참혹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정말 많이 울었습니다.그때 아픔을 함께 한 동료가 아직 다섯명이 남아 함께 뛰고 있지요.
▶김=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LA올림픽때 귀국 후 카퍼레이드를 했었는데 메달을 못딴 선수는 관광버스를 타고 뒤를 따라왔지요.그것도 남이 볼새라 창문마다 커튼을 달고요.정말 참담한기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장=90년 호주 월드컵때 3위를 한 것입니다.영국팀과의 3,4위전에서 종료 5분을 남겨놓고 제가 넘어지면서 슛을 날린게결승골이 되었습니다.강호 영국을 꺾는데 한몫한 것같아 아직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김=저는 88올림픽때의 동메달입니다.그 동메달로 인해 적지만 연금도 받게 됐고 국제레슬링계에도 알려지게 됐으니까요.또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때 자유형에서는 혼자 금메달을 따내 뿌듯했습니다.그때만해도 주변에서는 「한물갔다」며 백안시 했으니까요.
***선수촌 분위기 자유로워져 -너무 오랫동안 선수촌에서 생활하다보니 김선수에게는 특별히 「선수촌 귀신」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는데 요즘 선수촌 생활은 어떻습니까.
▶김=한마디로 좋은 시절 다 보냈어요.뉴델리아시안게임때인 82년7월 입소한 이후로 연간 3백일 이상을 선수촌에서 지내다보니 선수촌내 웬만한 얼굴은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됐지요.예전에는 선수촌의 규율이 엄해 코치 사인이 없으면 외출 하기 힘들었습니다.마치 병영생활을 하는 느낌이었지요.그러나 요즘은 격주로금.토요일에 쉴 수 있고 규율도 엄하지 않습니다.선수촌도 사회의 변화처럼 권위주의 시대에서 자유분방한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죠. -좀 다른 얘기지만 여자나이 26세면 결혼할 때도 됐는데.혹시 사귀는 사람은 있나요.신랑감으로는 어떤 남자가 좋다고 생각합니까.
▶장=(수줍어하며)마음 같아서는 당장 사귀고 싶지만 운동에 지장을 줄까 두려워 사귈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배필을 고른다면같은 운동선수는 피하고 싶습니다.너무 힘들다는걸 잘 아니까요.
아직 선본 사람은 없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으 면 좋겠어요.
-선수들이 결혼하고 나면 조기은퇴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선수는어떻게 생각합니까.
▶김=결혼하고 나서도 금메달을 따는 경우가 많습니다.88올림픽때 김영남.유인탁 등이 그렇지 않습니까.가장(家長)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절제를 철저히 할수 있어 미혼선수들보다 장점이 있습니다.
[정리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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