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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26.二水二山의 명당 상주 우무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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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상주 시내 여관에서 잠이 들었는데 느닷없이 수탉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린다.내가 분명 어젯밤 도시에서 잠자리를 잡았는데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란 생각이 퍼뜩 들어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4시 정각이다.어제 시내로 들어오며 자전거 통행량 이 많은 것을 보고 상주는 갈 데 없는 전통의 고장이구나 하는 감회를 잠깐 가진 적이 있지만 계명성(鷄鳴聲)까지라니,희귀한 고을임에틀림이 없다.하지만 정각에 울어대는 수탉이라,그렇다면 이 놈의닭이 현대식 도시 교육을 받은 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표준시는 자오선 기준으로 30분 빠르기 때문에 이 닭이 천기(天機)에 정확했다고 할 수는 없고 다만 시계에 잘 적응했다고나 해야맞는 말이겠다.
상주는 일찍이 경상지방의 행정 중심으로 경주와 함께 경상도라는 이름을 갖게 한 큰 고을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징성은 「삼백(三白)의 고장」이란 별호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전원풍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곳이었다.삼백이란 쌀과 누 에고치와 목화를 칭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목화 대신 곶감 껍질의 흰 가루가 그를 대신 가리키면서 물론 그 특성이 크게 쇠퇴하기는 했다.그런데 그 사라져가는 흙냄새를 자전거와 닭소리가 되살려주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이것이 상주 시가지에서의 삶의 질이 높다는 소재는 되지 못한다.어차피 닭 울음소리라는게 도회지에서는 소음에 지나지않게 돼버렸고,자전거란 것도 결국 교통 혼잡과 도로의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주에서 조그마한 희망의 그림자를 본다.상주 주민들이 조금만 참고 양보를 한다면 닭이 울고,개구리가 개골거리고,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이 되는 생태도시를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기록에 의하면 상주시중동면우물리 우무실마을은 낙동강과 위수 두 물(二水)이 합류하고,속리산.팔공산.일월산등 세 산(三山)의 지맥이 한곳에 모인 절승(絶勝)의 명기(名基)라는 것이다(『尙州의 얼』참조).산이 뻗으면 물이 돌고 물이 흐르면 산이 섰다는 이곳은 지금 우물1리와 2리로 나누어져 위수를 경계로 마주보고 있다.하지만 본래 우무실이란 곳은 지금의 1리를 말한다.마을 서쪽에 있는 1백28의 봉황성이란 산을 중심으로 낙동강과 위수가 흘러 동.서.남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였고,북쪽만 일월산이 영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낙동강과 만나고 있다.서쪽 강건너 나각산(螺角山.속칭 나구산.낙동시장 동쪽)은 화북의 속리산이 마무리진 곳이요,동쪽 쉰등골은 군위 팔공산이 위수와 같이 북으로 올라와 매듭( 節脈)을 지었다.그러니 이수삼산 합국(合局)의 천하대지라는 것이다.우물1리 뒷산인 봉황성을 오른다.마을 입구에 남원양씨 비각 표지판이 나오는데 그곳을 입구로 삼아 정상쪽으로 길을 잡으면 곧이어 수암유선생유허비(修柳先生遺墟碑)가 덩실 하게 자태를 드러낸다.여기부터가 능선길인데 워낙잔솔밭과 관목숲이 우거져 두 물이 만나는 합수처를 찾기가 힘들다.그리고 정상에서 매우 희귀한 음택(陰宅)을 한 기 만났다.
비갈(碑碣)은 없이 다만 상석 앞머리에 「유유인진성이씨지묘(柳孺人眞城李氏之墓)」라 새겨놓았는데 판단키에 교혈(巧穴.특이한 명당)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든다.본래 유인(孺人)이란 조선시대 9품관의 아내인 외명부(外命婦)의 품계명이지만 지금은 흔히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의 신 주나 명정에쓰는 존칭이다.좋은 터를 골라 모친을 모셔 그 발음(發蔭)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쓴 교혈인지도 모르겠다.낙동강과 위수가 만나는 두물모지(合水處)산 정상에 쓰인 산소라니, 얼핏 교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 해 본 생각이다.
바람은 거세고 억새 서걱이는 소리가 음산함을 더하는데 분명 아래를 흐르고 있을 두 강물은 여전히 숲에 가려 몸체 드러내기를 삼가고 있다.
그러나 내 관심은 남의 산소가 아니다.두물모지를 보기 위해 강쪽으로 나가는 능선을 따라 나가니 이윽고 이수명당(二水明堂)의 장관이 눈앞을 가득 메우며 펼쳐져 나타난다.이곳이 바로 경상도의 이름을 만들고 상주가 상주이게끔 만든 바로 그 터라는 생각에 잠시 넋을 놓고 풍경을 조망한다.
위수(마을 사람들은 위천강 또는 위수강이라 부름)는 남서향으로 낙동 큰물에 몸을 맡기고 낙동은 상주와 의성의 경계를 이루며 남행하고 있으니 유정유순(有情柔順)의 순수지세(順水之勢)일수밖에.그 물길을 따라 곳곳에 백사장을 만들며 낙동강은 사행(蛇行)을 한다.아직 오염의 흔적은 없다.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산등성이는 바람이 거세던데 그 아래 두물모지가 빤히 보이는 이 곳 바위밑은 어느덧 초여름의 초록 기운이 무르녹아 땅기운까지 솟구치듯 솟아난다.가위 천하대지 라는 명호(名號)가 조금도어색하지 않은 풍광이다.그런데 『풍수에서 온전히 아름다운 땅은없다(風水無全美)』고 하지 않던가.하늘 위로부터 끊임없이 전투기들의 훈련비행 소리가 들려온다.조용히 앉아 어머니인 땅의 소리를 듣기에는 그 소 리가 너무 정신을 산란케 한다.
다시 위수 아래로 내려와 다리를 건너 우물2리로 들어가려는데그 다리가 기가 막히다.다리 가운데쯤이 조금 내려앉았는데 여기서 누군들 성수대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다리를 다 건너고 나니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생각 같 아서는 이 다리를 다시 건너지 말고 의성군단밀면쪽으로 해 빠져 나갈까 하는속셈도 해보았지만 우무실을 다시 보고 싶기에 모험을 하기로 한다.나는 이 다리가 위험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할 도구를 갖고 있지는 못하다.하지만 보는 것만 으로도 겁을 주는 생김새라면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 물2리는 좀 묘한 곳이다.다른 곳은 위수에 의하여 상주와 의성의 경계가 지워지는데 유독 두물모지인 이곳만은 부자연스럽게 떼어 상주 구역에 붙여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을 주민들은 그것을 조금도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는다.전에 다리가 없을 때는 의성군단밀면으로 나가는 것이 편리했지만 지금은 길이 좋아져 상주시로 남는게 더 좋다는 것이다.아마 옛날 어느땐가 상주의 힘이 좋았을 때 낙동과 위수가 만나는이 곳 두물모지 양안(兩岸)을 모두 차지하고 싶던 상주 권세가가 무리한 주장을 해 이런 이상한 경계를 획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이 들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살고 있는 주민들이 좋다고 하는데.
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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