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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째 이후의 평양 (2001-08-20)

중앙일보

입력

대축전에 기자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말', '민족21'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통일뉴스', 주간 '시민의신문', '기자협회보' 등 6개 언론매체 소속 기자 6인과 '자주민보', '참여사회'(참여연대 기관지) 기자 2인 등 8명은 최근 국내 언론의 남측 대표단과 관련된 일련의 기사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시각을 전달하기로 뜻을 모아 아래의 기사를 각 매체에 공동으로 보도하기로 하였다.(평양=8개사 기자단)

서동만(상지대 교수, 경실련통일협회정책위원장, 민화협 대표로 참가)

평양에 와서 이틀은 그야말로 초긴장 그 자체였다. 이미 국내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가 추진본부나 취재기자들이 남쪽의 본부나 본사와 연락을 취하는 가운데 알려지고 있었다.

분명히 일부 대표가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제막식 행사에 참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표단 집행부가 북측과 협의를 진행하던 도중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돌발사태였다.

참관 인원은 70-80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참관했을 뿐이며 행사에서 무슨 발언을 한 것도 성명을 발표한 것도 아니다. 참가자들로서는 4천여명의 북측 대표가 이틀 동안 뙤약볕에서 기다린다는 데 대해 미안한 감이 작용한 점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북측이 남측 대표단의 방침이 정해지기도 전에 참관을 개별적으로 권유한 데 문제가 있었다. 일부 대표가 집행부의 통일된 견해가 나오기도 전에 이를 확인하지 않고 행사 참관한 것도 분명 잘못이다. 다만 집행부를 포함하여 대다수 대표들은 정부의 방침을 존중하여 호텔에 남았다.

대표단은 북측에 공식 항의를 하면서 예정된 일정에 임하였다. 이틀 째 폐막식도 남쪽 정부와의 약속을 존중하여 참가하지 않되 제3의 장소에서 북측 대표들을 맞이하는 방식을 강구하였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철수 등 강경한 견해도 있었으나 행사의 원 취지를 살려 의연하게 방북 일정을 마무리 짓기로 하였다.

무엇보다도 분단 이후 최초로 이루어진 8.15 남북공동행사였으며 더욱이 북녘 땅에서 남북의 민간 단체가 대규모로 함께 모인 것이다. 남쪽의 종교를 망라하는 개신교, 불교, 가톨릭, 성균관, 천도교, 대종교, 단군교 등 7개 종교단체, 여성, 시민, 노동, 농민, 청년, 학생, 문화, 예술, 경제, 지역 등 각 분야를 포괄하는 남쪽의 대표적인 민간단체의 대표 3백명 이상이 평양 한복판에 와 있었다. 돌발사태 하나로 이 모든 노력과 의미를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사흘 째부터 대표들은 이번 방문의 본격적인 성과와 그 의미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백여명의 대표 가운데는 한 두 차례 북측을 방문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처음 북녘 땅을 밟았다. 우선 그 감격은 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북한이나 남북 관계를 전공한 학자들도 7-8명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는 10-20년 북한 연구를 해 온 학자들도 있다.

사진으로만 보아 온 평양 시내 주요 장소를 북측 안내를 받으며 곳곳이 참관하면서 북한이 어떠한 체제인지 경제상태가 어떠한지 피부로 느끼는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북측이 선전을 목적으로 안내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연구자들에게는 이번 북한 방문이 그동안 북한 체제에 대해 가졌던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갈증의 해소였다. 이 방문은 각자에게는 북한 연구에서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실제 접해 본 평양은 사진으로만 본 것과는 달랐다. 사진으로는 깨끗하게만 보였던 아파트나 사무실 건물은 대체로 70-80년대식의 낡은 건축물이었다. 북한 경제가 80년대에서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대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에 가보니 건물은 거창했지만 도서목록 중 외국도서는 80년대까지 밖에 없었다.

영어, 일어 져널들도 백넘버가 대체로 80년대 중반이나 늦어도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91년도부터 중단되어 있었다.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호텔 음식이나 인민들의 얼굴 영양 상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평양 주민들의 전력 상태도 밤이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오랜 동안 통일운동이나 대북지원운동 등에 종사하면서도 처음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북측과 만나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었던 이들이 정부 허가를 얻어 합법적으로 직행비행기를 타고 북에 온 감회는 또한 어떠했겠는가? 북한 땅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실상을 확인한다는 것이야말로 보수층이 그토록 비판하는 환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운동을 지양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일정을 소화해 가는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대표들이 정말로 평양에 와서 좋았다는 데 생각이 일치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지속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에도 견해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라도 이번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각오를 굳히고 있다.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북측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하여 직접 알아볼 수 있는 개별적인 만남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평양, 백두산, 묘향산 관광길을 포함하여 모든 일정에서 대표들을 동행하며 안내를 맡은 북측 안내원들은 남측의 각양각색 사람들과 온갖 화제로 얘기 꽃을 피우게 된다.

남쪽 참가 단체들이 정치 성향은 보수에서 진보까지 얼마나 다양한가? 종교만 해도 7개나 되는데 각 종단 내부는 얼마나 복잡한가? 이렇게 복잡한 구성을 가진 단체들이 티각태각하면서도 어떻든 하나의 추진본부를 만들어 방북을 성사시키고 있다.

이들이 남쪽 사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남북 화해-협력에 불가결한 일이다. 북측 대남 사업에 종사하는 일꾼들도 남쪽 사회를 이해해가는 한편 점차 북쪽 사회와 비교해 보는 기회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남측 대표들도 북측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있는 북측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

또한 남쪽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호텔에서 아침, 저녁으로 정성껏 서브하는 복무원들과의 가벼운 인사나 대화도 소중한 만남이다. 대표들은 며칠 새에 호텔 내 술집, 찻집에서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의뢰원들과도 정이 들어가고 있다.

한편 각 분야별로 협의를 통해서 향후 구체적인 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예총이 협력 사업에 합의를 보고 있다. 학술 분야에서도 일제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공동학술회의 등을 협의하고 있다. 이미 일제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남북 민간 단체의 공동 전시회가 열렸고 공동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남북의 공동 보조는 고이즈미 내각이 보이는 망발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종교 분야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의 신도들이 모여 공동 예배를 가졌다. 이전까지 남측의 목사나 신부가 방문, 예배, 미사를 한 적은 있어도 성직자와 신도들이 모여 공동 예배, 미사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불교는 묘향산 관광길에 보현사를 방문, 공동 예불을 드렸다.

이 밖에 유교, 천도교, 대종교, 단군교 등 민족종교들도 상호 만남을 통해 구체적인 교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요한 사업으로 개천절 공동행사가 합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당국 대화가 중단되고 있지만 민간 사이에 이루어진 이만한 성과는 남북대화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흘 째 평양 시내 관광을 마치고 나흘 째에 묘향산, 백두산 관광에 나서는 길에 또 하나의 사건이 전해졌다.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관광 자리에서 방문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달성하자"는 글귀를 적은 것이 그대로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이 곳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보도가 되고 있는지 상세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기로는 이 글을 쓴 당사자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쓴 것은 아닌 듯 하다. 더구나 '만경대 정신'이란 것이 북측에서 쓰이는 공식 용어도 아니다. 통일사업을 위해 북쪽에 왔는데 만경대를 방문한 참에 이 두 가지를 단순 결합시켜 쓴 덕담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별 생각 없이 쓴 이 글귀 하나로 일파만파를 일으킨 것은 유감이며 본인의 해명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진상도 알아보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설명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여론몰이식 재판이 되어서는 남북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이 사건으로 이번 방문행사의 보다 본질적인 부분이 매몰되거나 그 의미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평양 방문 마지막 날을 남겨두고 있다. 방문을 결산하는 공동합의문에 어떠한 내용을 담을 것인지 집행부 실무진은 이 날 밤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것 같다. 북측도 이번 행사가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고 성의를 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며 귀국할 날을 기다린다. 대표단은 구체적인 방북 성과를 가지고 이번 행사에 대한 평가에 임할 것이며 문제가 되었던 돌발적인 사태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써 국민들을 직접 대할 것이다. (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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